사우디 女權신장 ‘조용한 혁명’중... 공직진출·이혼… 지위 변화
        등록일 2005-12-23

        사우디 신문 여기자인 마날 알 샤리프(37)는 9·11 테러 당시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었다. 그는 테러 현장의 참담함을 전하는 기사를 급히 본국에 송고했다. 그러나 그의 기사는 게재되지 않았다. “여자가 쓴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샤리프는 중간 간부로 승진한 뒤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같은 직급의 남성보다 적은 월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제는 사우디 여성의 지위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가질 만하다”고 말한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권(女權)운동이 의미심장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21일 보도했다. 첫 신호탄은 지난달 30일 제다 상공회의소 이사회 선거였다. 12명의 이사를 뽑는 이 선거에 사우디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입후보했다. 2명의 여성이 뽑힌 이 선거 결과는 2009년 사우디 총선에서 여성 후보가 출마할 가능성을 예고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우디 여성들은 공적(公的)인 영역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그러나 이제는 신문에 여성섹션이 등장했고, 얼굴 사진이 들어간 신분증도 가질 수 있다. 남편의 허락이 필요하긴 하나, 남성 보호자 없이 혼자 여행할 수도 있게 됐다. 여성들도 대학교에서 건축과 법학을 배울 수 있으 며, 이혼도 쉬워졌다.

        변화의 뿌리에는 9·11 테러가 있다. 당시 여객기 납치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국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끔찍한 테러를 부른 경직된 이슬람 교리에 대한 거부감이 일기 시작했다. 엄격한 교리 해석에 바탕을 둔 여성 차별적 관습도 흔들렸다.

        1991년 걸프전으로 상당한 채무를 지게 된 사우디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여성들이 쥐고 있는 잠자는 현금이 필요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여권 신장에 힘을 보탰다. 지난 8월 즉위한 압둘라 국왕도 여성의 사회 진출을 권장한다. 여기자 샤리프는 “우리는 전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얼어붙은 문화는 조용히 녹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 chosun.com 신정선기자 [ viole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