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가정폭력법 제정 및 시행 현황
        등록일 2022-01-31

        곽서희 로테르담에라스무스대학교(Erasmus University Rotterdam) 박사과정

        • 2021년 하반기, 영국에서는 가정폭력법(Domestic Abuse Act)*이 제정되었다. 본 법의 조항 중에서는 영국 전체가 아니라 잉글랜드(England)와 웨일즈(Wales)에만 한정되는 조항들도 있으나, 가정폭력이라는 행위를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법적으로 명확히 정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이 법은 폭력, 학대, 위협 등의 행위를 포괄하는 의미로 ‘domestic abuse’라고 명시하나 본 원고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간략하게 ‘가정폭력’이라고 칭함. 

        • 이 법은 폭력적인 행위가 성적, 신체적 폭력 및 폭력을 가하겠다는 협박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히는 언행, 자금이나 재산을 빼앗아 경제적 권한을 박탈하는 행위, 또는 다른 어떤 형태로 상대방을 통제하거나 억압적인 행위도 포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보복하기 위해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유포하는 행위나 그렇게 하겠다고 협박하는 행위(리벤지 포르노), 신체적으로 치명적인 상해를 입히지 않았어도 목을 조르거나 질식시키는 행위 역시 범죄로 규정하였다.
        • 또한 실질적인 가해자 처리 및 피해자 지원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잉글랜드 내 지역 당국은 가정폭력 피해자 및 그 자녀에게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고 안전한 거주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또한 지역 당국은 피해자가 세입자인 경우 임대인-임차인 계약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갈 곳이 없는 상황이면 우선적으로 거주공간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일반가정의(General Practitioner, GP)에서는 피해자가 법적 도움을 받기위해 필요한 문서 발급을 요청했을 때 피해자에게 수수료와 같은 일종의 금전적인 비용을 부과하는 헹위가 금지된다. 가해자는 구치상태에서 풀려나는 경우 그 조건으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잉글랜드, 웨일즈 내 민사법원과 가정법원에서는 가해자가 반대심문에 출석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법정에서 마주하여 피해자가 입었던 심리적 위협이나 고통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국 및 여러 유럽국가에서 개인은 보통 거주지 근처에 있는 일반가정의(GP)에 등록해두고, 필요한 경우 일반가정의를 만나 1차 진료를 받음. 대개 일반가정의의 소견서를 받아야만 전문의나 종합병원 진료가 가능하고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음         .

        • 법이 제정된 배경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8년 상반기, 정부는 가정폭력 대응 변화(Transforming the Response to Domestic Abuse)를 주제로 공개 정책협의를 실시하였으며, 그 결과 3,200여건 이상의 의견을 접수하였다. 이후 2019년 1월, 정부의 공개 협의에 대한 답변 및 가정폭력법 초안을 발표했고, 정부는 123개의 가정폭력 대응 추진 방향 및 피해자 지원 계획 등을 제시했다. 그리고 2019년 법안(the Domestic Abuse Bill 2017-2019), 이어 2020년 법안(the Domestic Abuse Bill 2019-2021) 단계를 거쳐 2021년 왕실의 최종 인가를 받고 법률로 제정되었다.
        • 영국 정부는 2020년 3월 말 기준 16-74세 성인 약 230만 명이 지난 1년간 가정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여성 160만 명, 남성 76만 명). 그리고 경찰에 접수된 각종 범죄 신고 평균 10건 중 1건 이상이 가정폭력에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 비해 가정폭력 발생률이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정부는 더 적극적으로 제도적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이다.
        • 노동당(Labour Party) 소속 이벳 쿠퍼(Yvette Cooper) 의원은 가디언(The Guardian)지 기고를 통해 이번 법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기도 했다. 법에서 명시한 여성과 여아대상 폭력 대응체계 및 절차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쿠퍼 의원은 기존 법 개정을 2021년 초 제안한 바 있다. 그녀는 현 법이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피해입은 피해자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법 개정 제안 당시 6개월로 사건 접수 유효기간을 철폐하여 피해자에게 결심하고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보장할 것을 제안했다. 
        • 지난 5년여간 잉글랜드와 웨일스 경찰은 가정폭력 사건 약 13,000여 건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는데, 그 이유가 일반 폭행 사건 기소에 6개월 기간 제한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쿠퍼 의원은 이러한 기간 제한이 술집에서 일어난 폭행 시비나 길거리에서 발생한 추행 등의 일회성 사건에는 적절할 수 있겠으나 가정폭력에는 적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피해자가 경찰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수없이 많고 다양한데, 가해자가 계속 학대하고 있거나, 가해자에게서 벗어나는 게 정신적으로 어렵거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경우, 피해자가 부끄럽게 여겨서 꺼리는 경우, 돈이나 갈 곳이 없어 도망치지 못하는 경우, 자녀가 있는 경우 등이 있다. 또한 쿠퍼 의원은 심각한 신체 상해의 경우 가해자가 기소되지만, 현장 경찰들로부터 수많은 가정폭력 사건이 법적으로 일정 수준에 미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일반적인 폭행 수준으로 격하된다고 들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 법적 기반 마련 이외에도 영국 정부는 좀 더 실질적으로 대중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는 차원에서 여성 및 여아 대상폭력 근절 캠페인을 기획하기도 했다. 2021년 7월, 영국 내무부에서는 여성 및 여아 대상 폭력 철폐 전략을 발표했다. 해당 전략은 피해자에게 적극적인 도움요청을 장려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부가 폭력 가해자를 타깃으로 가정폭력은 용납될 수 없는 범죄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캠페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21년 연말 가디언(The Guardian) 측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본 캠페인을 2022년실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전략을 발표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캠페인의 전반적인 내용이 원론적이고 개념적인 수준에 머물러있어 올해 실제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 스토킹 관련 피해자 지원 및 인식 제고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비영리재단 ‘Suzy Lamplugh Trust’에서 정책 및 캠페인을 담당하고 있는 사스키아 가너(Saskia Garner)는 이에 대해 실행이 중요하지만 캠페인 메시지가 정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예를 들어 같은 캠페인 메시지여도 스토킹 가해자와 다른 유형의 폭력 가해자가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내무부 대변인은 정부가 늦어도 2022년 3월 말까지는 본 캠페인 이행에 착수하고자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여성단체, 학계, 피해자 지원 분야 관계자 등에게 다각도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가해자는 가해 행위를 멈추고 피해자는 본인의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캠페인 메시지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가정폭력법이 본격적으로 이행되고 인식제고 캠페인이 실시되면 영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하다.

        <참고자료>
        ■ Government of the United Kingdom(2021.11.22.), "Policy paper-Domestic Abuse Act 2021: overarching factsheet", URL: https://www.gov.uk/government/publications/domestic-abuse-bill-2020-factsheets/domestic-abuse-bill-2020-overarching-factsheet(접속일: 2022.1.15.).
        ■ The Guardian(2021.11.07.) "Launch of campaign to tackle violence against women delayed," The Guardian, URL: https://www.theguardian.com/society/2021/nov/07/launch-of-campaign-to-tackle-violence-against-women-delayed (접속일: 2022.01.16).
        ■ The Guardian(2021.11.19.) "The law is failing domestic abuse victims in England and Wales. But we can change it," URL: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1/nov/19/law-uk-domestic-abuse-victims-assaults-justice  (접속일: 2022.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