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성정치인과 정당문화 현황
채혜원 독일통신원
- 독일의 젊은 여성 정치인 60%가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베를린에 있는 ‘여성정치·경제 아카데미(European Academy for Women in Politics and Economics, EAF)’가 발표한 ‘정당 문화와 여성정치 참여’ 연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여성 정치인의 40%가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 특히 45세 미만 여성 정치인의 60%가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연구팀은 부적절한 접촉뿐만 아니라 외모 등을 포함한 성차별적 발언, 원치 않는 제안도 성희롱으로 간주했다. 응답자들은 성희롱이 저녁 행사와 당 대회, 선거 축하 파티, 비공개회의 등 주로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생했다고 답했다.
- 여성정치 및 경제 아카데미(EAF)는 알렌바흐연구소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으며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 지방정부에서 일하는 525명의 공직자가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이와 함께 34명의 심층 인터뷰가 추가로 진행됐으며, 이 중 여성은 27명이다. 전반적으로 이 연구는 여성이 정당과 정치기관에서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관해 조사했다. 연구팀은 여전히 여성 비율이 낮은 독일 정치 영역의 문화 변화가 시급하며, 여성이 공직에서 과소 대표되어 있는 현실이 변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방정부로 갈수록 상황은 어려운데, 시를 포함한 지방정부에서 여성 비율은 여전히 30%가 되지 않으며 고위직의 90%가 남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 이와 관련해 자유민주당 사무총장을 맡았던 린다 토이테베르크는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당 집행부를 포함해 정치인으로 일해 온 전 생애에 거쳐 성차별 문제가 동반되었다”며 “여성 정치인이 외모에 근거해 어떻게든 덜 진지하거나 덜 유능하다는 비난을 받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연구 조사에 참여한 여성 정치인의 65%도 이 의견에 공감했다. 이들은 성과와 외모, 행동 면에서 기대하는 바와 다른 현실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절반은 여성 정치인의 발언이 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발언할 때 더 자주 방해받는다고 답했다. 또한 여성 정치인이 과소평가되는 이유에 대해 남성 및 여성 응답자의 답이 크게 달랐다. 여성 응답자는 회의에 늦거나 논쟁적인 의사소통 스타일 등을 꼽은 반면 남성 응답자 대다수는 여성이 정치에 덜 관심이 있기 때문에 과소평가 받고 있다고 답했다.
- 여성 할당제와 같은 조치에 관련해서도 여성 응답자의 58%가 할당제가 필요하고 효과적이라고 답했지만, 남성 응답자가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31%에 그쳤다. 이어 응답자 중 여성 정치인의 절반 이상은 성평등한 대표성과 관련한 법적 요구사항을 지지한 반면 남성 정치인의 응답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 연구팀은 의회를 포함한 정치 영역에서 성평등한 참여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특히 정당에서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최근 치러진 20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 결과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 20대 연방의회의 여성의원 비율은 34.7%로 2017년 19대의 31%에 비해 약 3% 증가하는 것에 그쳤다. 19대 여성의원 비율 31% 역시 과거 연방의회 여성 비율(2009년~2013년 32.8%, 2013년~2017년 36.8%)보다 감소한 결과였다. 주정부 선거 역시 여성 의원 비율이 증가세를 보이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 여성 의원비율은 평균 27.7%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최고 직위의 90%는 남성이다.
- 정당별로 여성의원 비율을 살펴보면 큰 차이를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많이 의석을 차지한 사회민주당(SPD)은 2017년과 동일하게 여성 의원 비율 42%를 달성했다.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CDU/CSU)은 지난 의회에 비해 여성 의원 비율이 4% 늘었으나 여전히 24%에 불과하다. 자유민주당(FDP)은 기독연합과 비슷한 20%대였으며, 독일을위한대안당(AfD)도 19대와 같이 13%에 그쳤다. 가장 높은 여성의원 비율을 기록한 정당은 녹색당(Bündnis 90/Die Greens)으로 59%를 기록했으며, 좌파당(Die Linke)도 54%로 나타났다.
- 현재 독일 정당에서는 여성 할당제를 자발적으로 운영 중이다. 1986년 녹색당이 처음으로 여성 할당제 50%를 도입했으며 사회민주당은 1988년 40% 할당제를, 좌파당은 2011년부터 50% 할당제를 도입했다. 기독민주당은 1996년부터 30% 여성 할당제를 도입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 이와 관련해 연구팀은 “여성 의원 비율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정치 영역에서 여성 의원은 남성 의원에 비해 언론에 훨씬 더 많이 다뤄지고 있으며 그만큼 대중으로부터 비판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 남녀 유권자의 표심은 정당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 것은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다. 남성 유권자와 여성 유권자의 24%라는 같은 비율로 이 정당에 투표했지만 19대와 비교하자면 남성은 6% 감소한 반면 여성의 경우 12%로 증가한 결과다. 사회민주당 역시 남성(25%)보다 여성(27%)이 더 많이 투표했고, 남녀 모두 5%씩 증가했다. 녹색당은 특히 젊은 세대 여성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았으며, 여성 유권자의 16%가 녹색당에 투표했다. 남성 표를 많이 얻은 정당은 자유민주당과 독일을위한대안당이었다.
- ‘정당 문화와 여성정치 참여’ 연구진은 다른 무엇보다 고위직에 있는 싱글여성은 정치 영역이나 정당에서 승진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이뤄내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연구팀은 구조적 조치뿐만 아니라 정당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연구팀은 이를 위해 선거법 개혁이나 의회를 남녀 동수로 구성하는 ‘남녀동등구성법(Paritätsgesetz)’ 도입 논의에 대해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2019년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와 튀링겐주에서는 의회를 남녀동수로 구성하기 위해 정당이 선거인 명부 구성을 남녀동일하게 구성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러나 극우정당의 소송 제기로 두 주정부 헌법재판소 모두 위헌 판결을 내렸다.
- 보고서를 통해 연구진은 “정당이 성평등과 관련해 행동해야 하는 압력이 증가하고 있고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며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Konrad Adenauer Foundation)의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 인구가 정치 영역의 의사 결정 직위에 더 많은 여성이 있는 것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 한편 16년간 독일을 이끈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독일 언론 주드도이치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과의 인터뷰에서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촉구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정치가 여전히 남성 지배적이다”며 “정당이 국민의 정당으로 지지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을 정당에서 활동하게 하고 성평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메르켈 총리는 2018년부터 기독민주당 및 기독사회당 여성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왔으며, 1996년 기독민주당에 도입된 30% 여성 할당제에 대해서도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고 말해왔다. 또한 그는 네 번째 임기가 시작될 때 남성 9명과 여성 7명을 임명해 독일 역사상 가장 여성 장관 비율이 높은 내각을 구성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독일 정부는 남성 중심으로 내각이 구성되어왔으며 재무, 외교, 내무 등을 포함한 여러 연방 부처는 여성장관이 지휘한 적이 없다.
<참고자료>
■ tagesschau(2021.11.04.), ‘Vier von zehn Politikerinnen mit Sexismus-Erfahrungen’, https://www.tagesschau.de/inland/innenpolitik/sexismus-politik-studie-101.html (접속일: 2021.11.28).
■ dw(2021.11.04.), ‘Germany: 60% of young female politicians have experienced sexual harassment — study’, https://www.dw.com/en/germany-60-of-young-female-politicians-have-experienced-sexual-harassment-study/a-59726030 (접속일: 2021.11.26).
■ EAF Berlin. Diversity in Leadership(2021.10.01.),‘Parteikulturen und die politische Teilhabe von Frauen’, https://www.eaf-berlin.de/fileadmin/eaf/Publikationen/Parteikulturen_210x317_RZ-Hyperlinks-Ansicht_211028.pdf (접속일: 2021.11.28).
■ dw(2021.10.23.), ‘Merkel calls on women to get more active in politics’ , https://www.dw.com/en/merkel-calls-on-women-to-get-more-active-in-politics/a-59603273 (접속일: 202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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