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성평등한 언어 사용 논의 현황
        등록일 2021-08-30

        독일, 성평등한 언어 사용 논의 현황 

        채혜원 독일통신원

        • 2021년 7월 13일,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는 기내 인사말을 시작할 때 사용하는 ‘신사숙녀 여러분(Sehr geehrte Damen und Herren)’ 표현을 없앤다고 발표했다. 독일 매체 도이치벨레(DW) 보도에 따르면, 앞으로 루프트한자는 승객에게 건네는 인사말을 시작할 때 ‘신사 숙녀 여러분’ 대신 ‘탑승을 환영합니다’ ‘좋은 아침(또는 오후/저녁)입니다’는 문장으로 대체한다. 승객 호칭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관한 내용은 현재 논의 중이며, 정해지는 데로 즉시 적용할 예정이다. 이번 결정은 오스트리아항공, 스위스항공, 유로윙스를 포함하여 루프트한자 그룹이 운영하는 모든 항공사에 적용된다.
        • 유럽성평등기구(European Institute for Gender Equality)는 젠더 중립적 언어에 관해 “성별에 국한되지 않고 남녀에 관한 언급 없이 ‘사람’을 고려하는 언어”로 정의한다. 유럽의회에서는 2018년, 젠더중립언어를 사용하는 목적은 편견, 차별 또는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단어 선택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 독일에서는 오래전부터 젠더 중립 단어 사용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독일어는 한국과 달리 모든 명사가 남성, 여성, 중성으로 나뉜다. 명사 외에 관사에도 성이 존재한다. 기본값은   남성형이다. 예를 들어 남성 의사는 ‘Arzt’이며 여성 의사는 ‘Ärztin’으로 표기하지만 일반적으로 ‘의사’를 칭하는 단어를 쓸 때 ‘Arzt’를 많이 사용한다.
        • 독일 정부 차원에서 성평등언어 또는 젠더중립언어 사용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 것은 2019년부터이다. 독일 주정부 중에서는 처음으로 하노버시가 2019년 1월 18일, ‘성평등한 행정용어 사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 이에 따라 하노버시에서 사용하는 모든 행정 서신, 예를 들어 이메일과 서신, 양식과 법률 텍스트, 인쇄물과 전단지, 보도자료 등에서는 가이드라인에 따른 언어를 사용한다. 가이드라인은 하노버시의 여성 및 성평등국, 젠더다양성위원회, 커뮤니케이션 부서,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 있는 플렌스부르크시의 성평등담당관 등의 지원으로 개발되었다. 당시 하노버 시장은 “다양성은 우리의 강점이며, 새로운 언어 가이드라인 마련은 성별 구분을 떠나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사회로 한 단계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하노버시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의 가장 중요한 기본 규칙은 가능한 한 성별/젠더 구분 없이 포괄적인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남성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Herr(헤어)’나 여성을 지칭할 때 쓰는 ‘Frau(프라우)처럼 특정 성을 지칭하는 표현 사용을 배제한다. 남녀로 이뤄진 부부 관계, 예를 들어 슐츠 부부(Herr und Frau Schulz)란 형식 대신에는 아니타 슐츠 씨와 콘라드 슐츠씨(Anita Schulz und Konrad Schulz)처럼 전체 이름을 적을 것을 권장한다. 또한 아이를 포함한 가족 전체를 부를 때에는 부부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슐츠 가족(Familie Schulz)으로 쓴다.
        • 이어 가이드라인은 정해진 수신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나 이름을 모르는 담당자 등에게 문서나 편지를 쓸 때 사용하는 ‘친애하는 남성 또는 여성 00에게(Sehr geehrte Damen und Herren)’ 대신 성별을 표기하지 않아도 되는 인사말, ‘Guten Tag(안녕하세요)’ 또는 ‘Liebe Gäste(친애하는 손님)’ 사용을 권한다.
        • 단어 구조를 바꿔 성별이 표기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도 만들었다. ‘여성 심리학자의 조언(Rat der Psychologin)’ 대신 ‘심리학적 조언(psychologischer Rat)’, 남성형을 기본으로 한 ‘프로젝트 참가자(die Teilnehmer des Projektes)’ 대신 중성단어를 사용한 ‘프로젝트팀(das Projektteam)’ 등이 이에 속한다.
        • 하노버시에서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젠더포괄적인 언어 사용이 어려운 경우, 별표(*, 독일에서는 젠더 별표라 부른다) 사용을 권한다. 남성과 여성 어미 사이에 별표(*) 표기를 해 성별 구분을 없애는 방법이다. 남성 엔지니어(Der Ingenieur)나 여성 엔지니어(die Ingenieurin) 대신 성별 구분이 없는 엔지니어(Ingenieur*in)로 표기하는 방법이다. ‘친애하는 여성 동료와 남성 동료들에게(Liebe Kolleginnen und Kollegen)’ 대신 ‘친애하는 동료들에게(Liebe Kolleg*innen)’로 쓰는 방법도 여기에 해당한다.
        • 이 방법은 최근 몇 년간 독일 언론에서도 시도한 표기 방법이다. 남성 경찰을 칭하는 ‘Polizist’와 여성 경찰 ‘Polizistin’의 어미 사이에 별표(*)를 넣어 ‘경찰(Polizist*in)’로 쓰는 방법이다. ‘동료(Kolleg*in)’나 ‘은퇴 후 연금생활자(Rentner*in)’도 같은 방법으로 쓰고 있는 단어다.
        • 독일 내에서는 이러한 표기법 사용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젠더 중립적 단어 사용은 중요하나, 문법 변경으로 인해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예를 들어 여성 경찰을 뜻하는 ‘Polizistin’과 젠더 중립성을 넣어 남성과 여성 경찰 모두를 아우르는 ‘Polizist*in’, 이 두 단어는 글로 쓸 때는 별표(*)를 식별할 수 있으나 발음은 ‘폴리치스틴’으로 같아 말하거나 들을 때 구분이 어렵다.
        • 이를 두고 독일 라디오방송국 ‘Nova’에서는 별표(*)를 넣은 젠더중립 단어 사용을 두고 청취자들이 구분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언어는 시간에 지남에 따라 변화해왔고 자주 사용할수록 습관화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사회가 변하면 언어도 변하며 그 방법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명확성이 떨어져서는 안된다”고 입장을 전했다.
        • 일부 언어학자들은 젠더 중립언어 사용에 대해 회의적이다. 약 100명의 작가 및 학자 등으로 구성된 독일언어협회(Verein Deutsche Sprache e.V.)는 단어 중간에 별표(*)를 사용하는 방법은 독일어 문법과 철자 규칙에 맞지 않으므로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협회는 성명을 통해 “원칙적으로 차별 없는 언어 사용을 지지하지만 별표를 사용하는 방법은 언어적 관점에서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 다른 전문가들은 가부장적 사고방식 제거와 언어 평등을 이뤄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성별을 구분하는 독일어가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지속시키고 남자 또는 여자에 해당하지 않는 많은 이들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알렉산드라 셸레(빌레펠트 대학)는 도이치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루프트한자 그룹 선택과 같은 변화는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성인지적 감수성이 있는 언어 사용과 같은 상징적 조치가 성평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이나 조직 등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 ‘독일어표기법위원회’는 독일 전역에서 많은 기관이 언어 평등을 이뤄내기 위해 젠더 별표(*) 사용, 가능한 남성형을 기본으로 쓰지 않기 등의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런 표기법이 공식 맞춤법 사용에 관한 논의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어 2022년에 위원회에서 이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참고자료>

        • DW(2021.07,13), “Lufthansa will no longer address you as 'ladies and gentlemen'”, https://www.dw.com/en/lufthansa-will-no-longer-address-you-as-ladies-and-gentlemen/a-58252757 (접속일: 2021.07.22.)
        • Geschlechtergerechte Schreibung(2021.03.16.), “Geschlechtergerechte Schreibung”, https://www.rechtschreibrat.com/geschlechtergerechte-schreibung-empfehlungen-vom-26-03-2021 (접속일: 2021.07.29.)
        • DW(2020.08.03.), “German language association wants gender asterisk to be scrapped”, https://www.dw.com/en/grammar-gender-asterisk/a-54554927 (접속일: 2021.07.22.)
        • Landeshauptstadt Hannover, “Neue Regelung für geschlechtergerechte Sprache”, https://www.hannover.de/Leben-in-der-Region-Hannover/Verwaltungen-Kommunen/Die-Verwaltung-der-Landeshauptstadt-Hannover/Gleichstellungsbeauf%C2%ADtragte-der-Landeshauptstadt-Hannover/Aktuelles/Neue-Regelung-f%C3%BCr-geschlechtergerechte-Sprache (접속일: 2021.07.28.)
        • Verein Deutsche Sprache(2019.3.6.), “Der Aufruf und seine Erstunterzeichner”, https://vds-ev.de/gegenwartsdeutsch/gendersprache/gendersprache-unterschriften/schluss-mit-dem-gender-unfug/# (접속일: 2021.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