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임신 및 출산 선택권 정책 현황
        등록일 2021-07-30

        영국의 임신 및 출산 선택권 정책 현황

        황수영 브리스톨대학교 공공정책 석사

        • 영국 정부가 신생아 사망률을 낮추고, 산모가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산부인과 인력을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에서는 2021년 7월 말부터 경구 피임약이 출시된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들이 프로제스토젠 경구 피임약(progestogen-only contraceptive pill)을 의사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손쉽게 살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현재 10년으로 제한된 영국의 난자 냉동 기간을 더 늘려달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본론에서는 먼저 영국 하원 보건복지위원회 (House of Commons Health and Social Care Committee)가 2021년 6월 공개한 보고서를 중심으로 영국의 연도별 신생아 사망률과 출산 서비스 현황을 되짚어 본다. 이후 변화된 경구 피임약 구매 정책의 내용과 이 결정이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 영국의 현행 난자 냉동 정책을 검토하며 임신과 출산 선택권 관련 정책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도록 한다.
        • 영국 정부, 출산 서비스 개선에 246만 파운드 투입

         - 영국 보건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 Social Care)는 7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출산 시 산모와 태아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도록 246만 파운드(약 38억 8천만 원)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예산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 산부인과 인력을 확충하고, 관련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 영국의 신생아 사망률은 1980년 이후 꾸준히 감소했다. 영국 통계청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에 따르면, 1980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1,000명당 12명이었던 신생아 사망률이 2000년엔 1,000명당 5.6명으로 53% 감소했고, 2019년엔 1,000명당 3.7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에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사망한 신생아 숫자는 총 2,390명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영국 통계청은 1세 이하 신생아가 사망했을 경우 신생아 사망 통계에 포함한다.
         - 하지만 영국 정부는 신생아 사망률을 스웨덴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목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의‘산모 및 신생아 사망률 (maternal and infant mortality)’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스웨덴의 신생아 1,000명당 사망률이 2.1명으로 영국보다 1.6명 더 적다.  영국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신생아 사망 건수를 천 명대로 낮춰야 한다.
         - 영국 의회는 NHS의 부족한 산부인과 인력이 영국의 신생아 사망률을 현 수준에서 정체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라고 본다. 영국 하원 보건복지위원회가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6월 29일 발표한 보고서 ‘영국의 출산 서비스 안전(The safety of maternity services in England)’에 따르면, 영국왕립조산사학회(Royal College of Midwives)가 온라인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조산사 10명 중 8명(전체 응답자의 83%)에 교대 근무하는 의료진과 각 산부인과 부서에 순환 근무하는 의사가 부족해 산모의 안전한 출산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2020년 10월과 11월 사이 실시된 이 설문조사에는 영국 조산사 1,400명이 참여했다. 보건복지부가 2021년 4월 21일 하원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잉글랜드에만 조산사 23,664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산모에게 안전한 출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조산사 1,932명과 산부인과 전문의 496명이 더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 영국 의회는 해당 보고서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조산사 인력을 늘리는 것 뿐 아니라 산모들이 출산할 때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적절히 받을 수 있도록 마취과 전문의 등 필수 의료진을 추가로 고용해야 할 것”이라면서 “즉각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선 연간 예산을 2억~3억5천만 파운드(약 3,181억~5,566억 원)로 늘려 산부인과 인력을 확충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 영국에서 처방전 없이 프로제스토젠 경구 피임약 구매 가능

         - 영국에서 7월 말부터 프로제스토젠 경구 피임약을 의사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편리하게 살 수 있다. 처방전 없이 경구 피임약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영국에서 처음 있는 일로, 여성들이 피임과 임신 선택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한국의 식약처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영국 의약품규제청 (MHRA, Medicines and Healthcare products Regulatory Agency)는 7월 8일 이런 내용을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프로제스토젠 경구 피임약은 영국에서 ‘미니필(mini pills)’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앞으로 영국에 사는 여성들은 약국에서 약사와 간단한 상담을 한 뒤 한 달 치 피임약을 약 7.50 파운드(약 12,000원)에 살 수 있다. 구매 가능한 브랜드는 로비마(Lovima)와 하나(Hana) 두 가지다. 프로제스토젠 피임약에는 데스게소트렐(desogestrel)이라는 성분이 포함돼 있는데, MHRA는 이 성분이 대부분 여성들에게 안전하다고 평가했다.
         - MHRA는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 전 올해 2월부터 시민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MHRA에 따르면, 공청회를 통해 총 494개 의견이 접수됐고, 전체 접수된 의견 중 80%가 프로제스토젠 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사는 내용에 찬성했다.
         - 영국왕립산부인과협회(RCOG, Royal College of Obstetricians and Gynaecologists)의 에드워드 모리스 회장은 “MHRA의 결정은 여성들에게 큰 승리를 의미한다. 앞으로 여성들이 피임약을 살 때 불필요한 장애물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면서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많은 여성들이 기본적인 여성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해 힘들어했고, 원하지 않는 임신 때문에 엄마와 아기 모두가 힘든 상황을 겪기도 한다”고 이번 결정을 환영했다.
        난자 냉동 기간 10년 제한, 연장 목소리
         -  현재 영국에서 최대 10년으로 제한된 난자 냉동 보관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산부인과학회와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10년이 지나면 보관된 난자는 관련 법인 인간 수정 및 발생학 법 1990(The Human Fertilisation and Embryology Act 1990)에 따라 자동으로 폐기된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코로나19 영향으로 치료가 일시 중단된 불임 치료 환자들만 대상으로 난자 냉동 보관 기간을 2년 추가 연장하기로 해 임신을 미루기 위해 난자를 냉동한 여성들은 추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  영국 정부는 2020년부터 난자 냉동 보관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관련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영국의 비영리 연구단체인 ‘Nuffield Council on Bioethics’는 2020년 9월 ‘영국의 난자 냉동(Egg freezing in the UK)’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난자 냉동 보관 기간 연장이 여성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여성들이 나이가 더 어릴 때 건강한 난자를 냉동해 이후 임신 확률을 높일 수 있다”라면서 “남성의 생식 능력은 노화에 의한 영향을 덜 받지만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난자의 생식 능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난자와 정자 냉동 기간을 늘리면 여성이 더 큰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영국왕립산부인과협회도 2020년 2월 27일 ‘영국의 난자 냉동 보관 기간 법은 너무 제한적’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유리화(vitrification)이라고 알려진 새로운 난자 냉동 기술이 개발돼 앞으로 난자를 무기한 냉동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서 “10년 제한 정책 때문에 여성들이 난자가 가장 건강한 20대에 냉동하는 대신 난자의 질이 다소 떨어진 30대 때 냉동하면서 임신 가능성이 작아지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 영국 의회가 2021년 6월, NHS 산부인과 인력 부족 현상을 지적한 보고서를 발표한 뒤 영국 정부는 관련 인력 추가 채용하기 위한 예산 246만 파운드를 투입했다. 2021년 7월 말부터 영국에서 여성들이 처방전 없이 경구 피임약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여성의 피임과 임신 선택권을 강화한 긍정적인 정책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10년으로 제한된 난자 냉동 보관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영국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앞으로 관련 법 개정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 GOV.UK(2021.07.04.), “Government pledges £2.45 million to improve childbirth care”, https://www.gov.uk/government/news/government-pledges-245-million-to-improve-childbirth-care (접속일: 2021.07.25.)
        ■ The Royal College of Midwives(2020.11.16.), “Fears for maternity as staffing shortages hit safety and morale say RCM”, https://www.rcm.org.uk/media-releases/2020/november/fears-for-maternity-as-staffing-shortages-hit-safety-and-morale-says-rcm/ (접속일: 2021.07.25.)
        ■ House of Commons Health and Social Care Committee(2021.06.29.), “The safety of maternity services in England”, https://committees.parliament.uk/publications/6578/documents/71418/default/ (접속일: 2021.07.25.)
        ■ GOV.UK (2021.07.08.), “First progestogen-only contraceptive pills to be available to purchase from pharmacies”, https://www.gov.uk/government/news/first-progesterone-only-contraceptive-pills-to-be-available-to-purchase-from-pharmacies (접속일: 2021.07.25.)
        ■ The Guardian (2021.7.8.) “Contraceptive ‘mini pills’ to be offered over the counter in UK”, https://www.theguardian.com/society/2021/jul/08/contraceptive-pill-will-be-available-over-the-counter-for-the-first-time (접속일: 2021.07.25.)
        ■ Nuffield Council on Bioethics (2020.9.) “Egg freezing in the UK”, https://www.nuffieldbioethics.org/assets/pdfs/Egg-freezing-in-the-UK.pdf (접속일: 2021.7.25.)
        ■ Royal College of Obstetricians and Gynaecologists (2020.2.27.) “UK law on storage limit for egg freezing is too restrictive, say RCOG and BFS”, https://www.rcog.org.uk/en/news/uk-law-on-storage-limit-for-egg-freezing-is-too-restrictive/ (접속일: 2021.7.25.)
        ■ OECD.Stat(2021.07.02.), “Health Status: Maternal and Infant Mortality”, https://stats.oecd.org/index.aspx?queryid=30116 (접속일: 2021.07.25.)
        ■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2021.02.24.), “Child and infant mortality in England and Wales: 2019”, https://www.ons.gov.uk/peoplepopulationandcommunity/birthsdeathsandmarriages/deaths/bulletins/childhoodinfantandperinatalmortalityinenglandandwales/2019 (접속일: 2021.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