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에버라드(Sarah Everard) 사건과 영국의 여성 보호 정책
        등록일 2021-03-30

        사라 에버라드(Sarah Everard) 사건과 영국의 여성 보호 정책  

        황수영 브리스톨대학교 공공정책 석사

        ○ 2021년 3월 초 영국 런던에서 30대 여성 사라 에버라드가 집에 가던 길에 납치돼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해  영국 전역으로 추모 집회가 확산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 정부와 의회는 여성 혐오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논의 중이다. 본론에서는 먼저 사라 에버라드 사건 발생 직후 영국 정부가 내놓은 여성 보호 정책을 분석한다. 이어서 경찰이 범행 동기를 수사할 때 여성 혐오가 범죄를 저지르는데 주요 동기가 됐는지 의무적으로 조사해 기록해야 하는 내용이 추가된 가정폭력 법안(Domestic Abuse Bill)을 분석해 해당 법안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도록 한다.

        ○ 사건 이후 영국 정부, CCTV 조명 설치 확대하고 경찰권 강화
        - 2021년 3월 3일 귀갓길에 실종된 33세 여성 사라 에버라드가 실종 10일 만에 사망한 채 발견되면서 영국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사건 용의자가 현직 경찰로 밝혀지고, 경찰 당국이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서 집에 머물라는 지침을 내리자 영국 여성들이 강하게 항의하며 전국적인 집회로 이어졌다. 이는 2015년 서울 강남역 근처 노래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돼 추모 열기가 달아올랐던 ‘강남역 살인사건’과 닮은 점이 많다. 영국 전역으로 여성들의 분노가 퍼지자 2021년 3월 15일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가 직접 여성 보호 정책을 내놓았다.
        - 먼저 영국 정부는 ‘Safer Streets’예산을 기존 2천만 파운드(한국 돈 약 311억5,000만 원)에서 두 배 이상인 4,500만 파운드(약 700억 8,000만 원)으로 늘렸다. 2020년 1월 처음 시행한 이 정책은 여성을 표적으로 한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잉글랜드와 웨일스 우범 지대 52곳에 CCTV와 조명을 추가로 설치해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범지대는 공원과 골목길, 술집, 식당, 나이트클럽 등 늦은 밤 문을 여는 영업 시설과 이어진 길 등을 포함한다. 영국 내무성(Home Office)가 2021년 1월 발표한 보고서 ‘Safer Streets Fund (2021-2022) Prospectus’에서 “우범지대에서 발생하는 절도, 강도, 성범죄 같은 범죄들은 거리 조명이 밝아지고, CCTV 개수가 늘어나 범죄자들이 검거될 가능성이 커지면 범죄 발생률이 줄어든다는 증거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 이와 함께 ‘Project Vigilant’라는 시험 정책을 내놨다. Vigilant는 영어로 빈틈없는 경계를 뜻한다. 이 정책은 정복, 사복 경찰이 함께 여성 피해자를 노리는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을 돌며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용의자들을 찾아내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경찰들이 클럽이나 술집에서 잠복하며 여성들이 안전한지 확인하고, 술집이 문을 닫는 시간에 순찰 경찰 숫자를 늘리는 방식이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내무성 보도자료를 통해 “사라 에드버드 사건 이후 많은 여성이 밤길에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거리에 경찰과 CCTV 숫자를 늘리고, 여성들이 집에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게 길을 더 밝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 하지만 경찰력을 강화하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개정안이 여성 보호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경찰의 힘만 키워준다는 것이 반대의 주 된 이유다. 야당인 노동당 당수 키어 스타머는 경찰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영국 정부의 정책은 “의미 없는 정책”이라며 “관련 법안을 재검토해 사법제도가 여성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 경찰, 앞으로 범행 동기 파악할 때 ‘여성 혐오’ 주요 동기인지 반드시 조사해야
        - 사라 에버라드 사건을 계기로 혐오 범죄(hate crime)에 여성 혐오(misogyny)를 포함하도록 하는 법안 개정에 힘이 실리고 있다. 혐오 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은 1998 범죄장애법(Crime and Disorder Act 1998) 28~32 항과 2003 형사법(Criminal Justice Act 2003) 145항, 146항에 각각 명시돼 있는데, 영국 경찰과 검찰은 누군가가 장애, 성전환자 신분, 인종, 종교, 성적 취향 때문에 범죄 피해를 봤을 경우에만 혐오 범죄로 인정한다. 현행법에 따라 여성 혐오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 이와 별도로 여성 혐오를 혐오 범죄에 포함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발생하는 법안이 곧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상원(House of Lords)는 3월 15일 가정폭력 법안(Domestic Abuse Bill)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경찰이 범행 동기를 수사할 때 여성 혐오가 범죄를 저지르는데 주요 동기가 됐는지 의무적으로 조사하도록 하는 조항을 법안에 포함시켰다. 3월 25일 기준으로 해당 조항이 포함된 가정폭력 법안은 영국 상원을 통과했으며, 최종 관문인 왕실 재가(Royal Assent)를 앞두고 있다. 현재 혐오 범죄의 정의를 담고 있는 1998 범죄장애법과 2003 형사법이 개정되지 않더라고, 개정 내용이 포함된 가정폭력법이 제정되면 여성 혐오가 혐오 범죄로 인정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생긴다. 이 조항을 만든 앨리시아 케네디 상원의원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경찰은 스토킹, 성추행, 성폭행 등 모든 범죄를 조사할 때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했는지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영국에서 유일하게 경찰이 자체적으로 여성 혐오를 혐오 범죄에 포함해 수사하는 곳은 노팅엄셔 주(Nottinghamshire)다. 이곳 경찰은 2016년 4월부터 여성을 대상으로 언어폭력, 스토킹 등 범죄에 여성의 성별이 주요 범행 동기가 됐는지 별도로 데이터를 분리해 관리하고 있다.
        - 가정폭력 법안에는 이외에도 ‘스토커 등록제(Stalkers’ registrty)’를 도입해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저지르거나 스토킹을 한 이들을 별도로 등록해 감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 영국 정부는 사라 에버라드 사건이 발생한 지 보름도 되지 않아 여성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정책에 4500만 파운드 예산을 투입했고, 경찰력을 확대했다. 코로나19 발생으로 모임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영국 전역에서 집회가 열릴 만큼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기 때문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직접 나서 신속하게  정책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사건과 맞물려 경찰이 범행 동기를 수사할 때 여성 혐오를 별도로 분류해 기록하는 가정폭력법도 곧 법안 제정을 앞두고 있어 사라 에버라드 사건이 영국의 여성 보호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요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참고자료>
        ■ UK Parliament(2021.3.25.), “Domestic Abuse Bill”, https://bills.parliament.uk/bills/2709 (접속일: 2021.3.25.)
        ■ Home Office (2021.1.),“Safer Streets Fund (2021-2022) Prospectus”, https://assets.publishing.service.gov.uk/government/uploads/system/uploads/attachment_data/file/957227/SSF_R2_Prospectus_FINAL.pdf (접속일: 2021.3.25.)
        ■ The Guardian(2021.3.17.), “Police will be required to record crimes motivated by hostility to women – minister”, https://www.theguardian.com/uk-news/2021/mar/17/pmqs-sarah-everard-killing-must-be-a-turning-point-says-starmer (접속일: 2021.3.25.)
        ■ The Guardian(2021.3.15.), “Domestic abuse bill: what amendments are peers voting on?”, https://www.theguardian.com/society/2021/mar/15/domestic-abuse-bill-what-amendments-peers-voting-on (접속일: 2021.3.25.)
        ■ BBC(2021.3.15.), “PM defends policing bill amid criticism it fails to protect women”, https://www.bbc.com/news/uk-politics-56399860 (접속일: 2021.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