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적 통제도 가정폭력으로 인정한 가정폭력법 하원 통과
황수영 브리스톨대학교 공공정책 석사
- 2020년 7월 6일, 영국 하원은 신체적 폭력만 포함하는 전통적인 가정폭력의 정의를 넘어 정서적 폭력 및 경제적 통제까지 가정폭력으로 인정한 가정폭력 법안(Domestic Abuse Bill)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이 제정되려면 앞으로 상원(House of Lords) 통과와 왕실 재가(Royal Assent) 절차가 남아 있다.
- 이번 법안의 핵심은 신체적, 정신적 폭력 외에도 경제적 폭력(economic abuse), 강압과 통제, 교묘한 비신체적 폭력(manipulative non-physical abuse)까지 가정폭력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피해자 보호에 초점을 둔 구체적인 방안도 법안에 포함되었다. 법안은 지자체와 사법기관, 정부의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사항을 감독하는 가정폭력 위원직을 신설하고, 가해자의 피해자 접촉 금지, 가해자 행동 교정 훈련 등을 강제하는 가정폭력 보호 공고(Domestic Abuse Protection Notice)와 가정폭력 보호 명령(Domestic Abuse Protection Order) 내용도 담았다. 이와 함께 지자체가 피해자와 피해자 자녀를 위한 안전한 쉼터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고, 법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대질신문 금지, 가정폭력 피의자 석방 조건으로 심리·생리검사(polygraph testing, 거짓말 탐지기) 실시 등 내용도 추가되었다.
- 영국 정부가 가정폭력법을 발의한 것은 가정폭력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내무성이 2020년 3월 발간한 ‘가정폭력법안 주요 팩트시트(Domestic Abuse Bill 2020: Overarching factsheet)’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영국에서는 16~74세 연령의 가정폭력 피해자가 연간 240만 명씩 발생하고 있고, 피해자 3분의 2가 여성이다. 또한, 경찰에 신고된 범죄 10건 중 1건이 가정폭력과 연관이 있다”며 가정폭력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영국 내무성은 해당 보고서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발생한 가정폭력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2017년 3월 말 기준으로 660억 파운드(우리 돈 약 98조 300억 원)이라고 추정했다.
- 하지만,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를 중심으로 이번 법안이 가정폭력에 노출된 이민자 여성을 보호하는데 실패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흑인, 아시아인 및 소수 민족을 돕는 단체 50곳과 이민자 인권 단체, 앰네스티 영국지부 등이 연합해 이끄는 캠페인인 ‘Step Up Migrant Women’은 영국 정부의 가정폭력법안에 가정폭력 피해를 당한 이민자 여성을 위한 지원방안이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 가정폭력법안에 따르면, 배우자 비자를 소지한 가정폭력 피해자는 석 달간 금전적 혜택을 포함해 피해 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이민자 여성처럼 배우자 비자가 없거나 다른 종류 비자를 갖고 있는 피해자를 위한 지원방안이 빠져 있다.
- 흑인과 소수 인종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비영리 단체인 Southall Black Sisters의 대표 프라그나 파텔은 2020년 7월 6일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민자 여성이 배제된 이번 법안이 던진 메시지는 이민자 여성의 삶이 가치가 없고, 2등 시민이라는 것”이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참고자료>
■ GOV.UK(2020.07.07.), “Domestic Abuse Bill passes House of Commons”, https://homeofficemedia.blog.gov.uk/2020/07/07/7626/ (접속일 : 2020.07.15.)
■ GOV.UK(2020.03.03.), “Domestic Abuse Bill 2020: overarching factsheet”, https://www.gov.uk/government/publications/domestic-abuse-bill-2020-factsheets/domestic-abuse-bill-2020-overarching-factsheet (접속일 : 2020.07.15.)
■ The Guardian(2020.07.06.), “Migrant women deliberately left out of UK abuse bill, say campaigners”, https://www.theguardian.com/society/2020/jul/06/uk-government-accused-endangering-lives-migrant-women-domestic-abuse-bill (접속일 :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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