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퀘백주, 인권단체들 중심으로 성노동의 비범죄화 요구 확산
김양숙 캐나다 토론토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 2020년 1월, 캐나다 퀘백주에서는 성노동자가 가석방으로 풀려난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으로 성매매 합법화에 대한 논의가 다시 여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캐나다 가석방위원회(The Parole Board of Canada)는 2004년 한 여성을 살인한 후 수감 중이던 유스타치오 갈레세(Eustachio Gallese)에게 가석방을 허가하면서, 그에게 가석방 기간 동안 여성을 만날 수는 있으나 오직 성적 욕구 충족의 목적으로만이라는 조건을 붙인 바 있다. 그러나 가석방을 허가받은 범인은 퀘백의 한 호텔로 22세의 성노동자를 불러들여 살해한 후 체포되었다. 이에 대해 2020년 2월 4일 신민주당의 로렐 콜린스(Laurel Collins)는 가석방위원회의 결정을 비판하면서 이번 사건이 잘 보여주듯 성매매를 범죄화하는 현행법이 성노동자(Sex worker)들을 더욱 위험으로 내몬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날 하원에는 성노동 또한 노동이라고 주장하는 성노동자들의 발언이 있었으며, 이러한 성노동 합법화 의견들에 대해 보수당 하원 비어슨 (Viersen) 의원이 콜린스 의원에게 매춘이 정당한 노동이라면 본인은 그 일을 해볼 생각을 해보았냐고 발언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콜린스 의원을 비롯한 신민당 의원들은 퀘백 살인사건을 계기로 정부를 압박하여 성매매 규제 법안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여당은 가석방위원회의 결정은 정부와는 무관한 독립적인 결정이라며 선을 그었다.
- 현재 캐나다에서 성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은 아니나 성 구매와 성매매 광고 행위를 불법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성매매를 규율하는 법적 근거는 지난 보수당 정권에서2014년 가결시킨 법안 Bill C-36(The Protection of Communities and Exploited Persons Act)이다. 그간 성노동자들은 이 법률 자체가 ‘성노동자들이 안전하게 느끼고 있는 그들의 노동환경을 범죄화’시켰고, 결과적으로 그들을 음지로 내몰아‘ 더 큰 위험에 노출시켰다’고 불만을 토로해 왔다. 이들은 또한 해당 법률이 캐나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개인의 안녕권(security of the person)을 침해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캐나다 총선 시즌 동안 성 건강과 권리 행동 연대(Action Canada for Sexual Health and Rights)는 새 정부가 성노동을 비범죄화(decriminalize sex work)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캐나다의 150여 개 인권 단체들이 공동 서명한 성명을 통해 현행법은 사실상 성노동을 모든 면에서 범죄화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성노동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필요한 사회적, 법적, 성 건강에 관련한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게 한다고 성토했다. 이 성명은 또한 성노동의 비범죄화를 통해서만이 성노동자들의 안전과 존엄을 담보할 수 있고 고립되지 않은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Bill C-36 도입 이전 캐나다 형법은 “외설적인 건물에서 성노동(sex work)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성 노동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2013년 캐나다 고등법원은 당시 법 규정이 오히려 위험한 매춘 환경을 조성하고 개인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없게 만든다고 판단, 당시 집권당이었던 보수당 정부로 하여금 입법화를 요구하였다. 요컨대 C-36의 도입 의도는 성노동자와 지역사회의 안전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그러나 캐나다 언론은 2014년 성노동이 불법화된 이후 법을 집행함에 있어 성노동자들과 경찰 간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원주민, 흑인, 트렌스, 이주 성노동자 등 소수자들을 겨냥한 폭력사건들이 늘어났으며, 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성노동자들이 단속에 대한 공포 때문에 고객과 충분히 사전 협상을 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고객과 동승하여 위험에 쉽게 노출되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는 결과에 이르렀다고 진단하고 있다. 경찰은 인권의 이름으로 성매매를 단속하고 있으나, 자신의 의지로 성을 상품화하는 성노동자들과 강제로 성매매에 몰리는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함께 규제함으로써 소기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 2014년 트뤼도 총리를 포함한 자유당 의원들은 C-36의 입안에 반대하는 표를 행사하였고 이후에도 해당 법안에 비판을 해왔으나 집권 후에는 뚜렷한 개정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집권 후 달라진 정치적 계산 때문에 중요한 이슈를 다루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9년 캐나다 총선에서 녹색당 만이 성매매 합법화 이슈를 공약으로 다루었다.
- 한편 합법화 요구가 거세지는 데는 지난 6월 뉴욕주의 성매매 합법화 법안 상정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뉴욕주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성매매 관련 과거 전과까지 삭제하자는 취지의 법안이 발의되었고 몇몇 미국의 대권주자들까지 지지를 보내면서 캐나다의 성매매 합법화 운동 또한 탄력을 받았다. 캐나다 내부에서의 압력도 있다.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많은 관심 속에 국책 사업으로 시행된 살해되거나 실종된 원주민 여성 프로젝트(the National Inquiry into Missing and Murdered Indigenous Women and Girls) 또한 최종 정책제언의 일부에서 성산업에 종사하는 원주민 여성 등 소수자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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