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인 | 모나시대학교 Intercultural Studies 조교수·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 빅토리아 주정부(멜버른 소재)는 2020년 「성평등법(Gender Equality Act 2020)」을 제정해 공공부문 조직이 성평등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를 법적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대학, 지방정부단체, 국공립병원 등 약 50인 이상 규모의 약 300개 공공기관은 직장 내 성평등 지표에 관한 자료를 공공부문 성평등위원회(Commission for Gender Equality in the Public Sector, 이하 성평등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 성평등위원회는 2021년, 2023년, 2025년 빅토리아주 내 약 300개 공공기관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지난 5년간의 변화와 추세를 분석한 「빅토리아주 공공부문 성평등 현황(State of Gender Equality in Victoria’s Public Sector 2026)」을 2026년 8월 1일 발표했다.
○ 이번 보고서는 성평등에 관한 단발적인 설문조사나 성평등의 경제적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집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동일한 조직을 대상으로 약 50만 명의 급여 데이터와 이사회의 성별 구성 현황, 직장 내 성적 괴롭힘 신고 자료, 채용 결과 등을 수년간 추적해 축적한 실증 자료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빅토리아주의 공공기관은 전체 노동력의 약 12%에 해당하는 약 50만 명의 주민을 고용하고 있는 최대 고용주다. 따라서 공공부문의 변화는 공공기관 종사자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빅토리아주 전체의 직장 문화와 고용 관행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 닉키 빈센트(Nikki Vincent) 성평등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법이 요구하는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출발점일 뿐, 최종 목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5년간의 변화에 대해서도 성평등 목표에 ‘도달’했다기보다는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 실제로 보고서에서는 여러 긍정적인 변화가 확인됐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여성의 고위직 진출 비율이 증가했으며, 11개 분야 가운데 4개 분야에서는 고위직 여성 비율이 해당 분야의 여성 고용 비율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2023년에는 이러한 분야가 2개에 불과했다. 경찰과 응급서비스 등 전통적으로 여성의 진입이 어려웠던 분야에서도 성별 임금 격차가 줄어들고 더 많은 여성이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빈센트 위원장은 이를 “구조적 변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 그러나 지난 5년간의 데이터는 이러한 성과와 함께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개별 기관의 상황은 전반적으로 개선됐지만, 여성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산업과 직종에 집중돼 있다. 이로 인해 전체 성별 임금 격차는 2021년 이후 크게 줄어들지 않았으며, 성별 직업 분리(gender segregation)는 여전히 임금 격차 개선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으로 남아 있다.
○ 돌봄을 둘러싼 성별 격차도 뚜렷하다. 특히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은 오히려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여성은 평균 5주의 육아휴직을 사용한 반면, 남성의 평균 사용 기간은 1주에 그쳤다. 이는 직장 내 여성의 대표성과 임금 격차뿐만 아니라 돌봄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다양한 원인 역시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을 보여준다.
○ 더욱이 앞으로 공공부문이 직면할 환경을 고려하면 지금까지의 성과를 낙관하기만은 어렵다. 빈센트 위원장은 현재 공공부문이 인력 감축과 예산 압박, 인공지능의 빠른 도입이라는 변화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직과 업무 방식이 급격하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성별 불평등이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에 그대로 반영돼 오히려 더욱 고착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성평등위원회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절차와 정책을 설계하는 단계부터 성평등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제가 발생한 뒤 이를 바로잡기보다 처음부터 제도 설계에 성평등 관점을 포함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번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그동안 변화가 더뎠던 분야에서 진전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경찰과 응급서비스 등 여성의 진출이 제한적이었던 분야에서도 성별 직무 분리가 완화될 수 있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구조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 다만 변화의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해서 그 변화가 저절로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5년간의 데이터가 보여주는 중요한 시사점은 의무적이고 장기적인 데이터 보고 체계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불평등을 가시화하고, 각 기관에 지속적인 책무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5년 전만 해도 빅토리아주에서는 관련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 임금, 리더십, 성적 괴롭힘, 돌봄 등 다양한 영역의 현황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장기간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어느 분야에서 정체가 이어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 이번 보고서에서 확인된 성과 역시 자동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공개하는 한편, 그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적 의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빅토리아주의 지난 5년은 성평등의 진전과 지속을 위해서는 개별 기관의 노력뿐만 아니라 이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갈 제도적 책무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참고자료>
○ Commission for Gender Equality in the Public Sector [CEGEPS]. State of gender equality in Victoria's public sector 2026. CGEPS. https://www.genderequalitycommission.vic.gov.au/state-gender-equality-victorias-public-sector-2026 (접속일: 2026.8.19.)
○ Jacky Watt and Hyein Cho (2024), 직장 내 성평등 증진과 개선: 호주 공공 부문의 성평등 정책 프레임워크. KDWI Brief. https://www.kwdi.re.kr/publications/kwdiBriefView.do?p=2&idx=132580(접속일: 2026.8.19)
○ Jacky Watt and Hyein Cho (2024), 직장 내 성평등 정책의 실제적 적용: 빅토리아주의 성평등법 시행과 한국에 대한 시사점. KDWI Brief. https://www.kwdi.re.kr/publications/kwdiBriefView.do?p=2&idx=132581(접속일: 2026.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