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회주택법 개정을 통한 가정폭력 피해자 주거 안정 확보 추진
        등록일 2026-06-30

        이지원 | 런던열대의학위생대학(London School of Hygiene & Tropical Medicine) 개발보건학 석사

        ○ 2026년 6월 영국 정부는 사회주택법안(Social Housing Bill) 개정을 통해 가정폭력 피해자의 주거 안정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주택(Social Housing)은 지방자치단체 또는 비영리단체가 제공하는 저렴한 주거 형태로, 장기적인 거주 안정성과 임대료 보조를 제공하며, 주로 저소득 가구, 취약계층, 민간 주택시장에서 주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해당 법안은 2026년 6월 의회 2차 국회에 상정되었으며,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임대인과 법원은 가정폭력 가해자를 주거지에서 강제퇴거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이번 조치는 사회주택에 거주하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집을 떠나지 않고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기존 제도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동 임대 형태로 사회주택에 거주하는 경우 피해자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집에 머물거나, 집을 떠나 노숙과 경제적 불안정의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지만을 남겨왔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분리되면서도 기존 생활공간과 지역사회 안에서 안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입의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집은 보호받아야 할 생활 기반이지만, 동시에 가해자가 통제와 협박을 행사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가정폭력은 대체로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발생하며, 피해자가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주거 문제는 가장 현실적인 장벽 중 하나가 된다. 주거가 불안정해지는 순간 피해자는 직장, 지역사회, 지원 네트워크로부터 멀어질 수 있고, 자녀가 있는 경우 학교와 돌봄 환경의 변화까지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피해자가 안전한 주거를 유지할 수 있다면 자녀의 생활 안정과 돌봄 연속성을 확보하고, 피해자의 생계와 회복 기반도 보다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가정폭력에서 벗어나는 일은 단순히 가해자와의 관계를 끊는 문제가 아니라, 생계와 주거 기반 전체를 다시 세우는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영국 가정폭력 국가센터(National Centre for Domestic Violence)에 따르면 성인 5명 중 1명이 생애 동안 가정폭력을 경험하며, 여성은 4명 중 1명, 남성은 6~7명 중 1명꼴로 가정폭력 피해를 경험한다. 이처럼 가정폭력은 여성만이 경험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피해 양상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여성은 반복적인 폭력, 신체적 위협, 성폭력, 살해 등 고위험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으며, 학대적 관계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전 파트너에 의한 심각한 폭행이나 살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따라서 가정폭력 정책은 모든 피해자를 포괄하면서도, 여성이 겪는 구조적 위험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이번 사회주택법 개정안에 직접적인 가정폭력 대응 조치가 포함된 것은 정부가 가정폭력을 가능하게 하거나 지속시키는 조건 중 하나로 주거 불안정에 주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존 제도에서는 사회주택 임대인이 가정폭력 가해자를 퇴거시키기 위해 피해자가 먼저 집을 떠나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공동임대의 경우 피해자가 임대계약 자체를 종료하지 않고서는 가해자와의 법적 관계를 정리하기 어려웠고, 이는 피해자를 노숙과 경제적 불안정의 위험에 노출시켰다. 또한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퇴거 통지를 제출해 공동임대계약을 종료시키고, 피해자가 집을 잃게 되는 허점도 존재했다. 결국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주거권이 오히려 가해자의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 개정안은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몇 가지 제도적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 우선 사회주택 임대인과 법원은 피해자가 먼저 집을 떠나지 않아도 가정폭력 가해자를 사회주택에서 퇴거시킬 수 있게 된다. 공동임대의 경우 피해자의 신청에 따라 법원은 임대계약을 피해자 단독 명의로 이전할 수 있으며, 피해자가 해당 주택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에 가능한 범위에서 적절한 대체 주거를 제공하도록 할 수 있다. 또한 관련 법원 절차가 진행 중인 동안에는 가해자가 제출한 퇴거 통지가 공동임대계약을 종료시키는 효력을 갖지 않도록 했다. 이는 가해자가 주거를 이용해 피해자를 압박하거나 집에서 내쫓는 것을 막는 조치이다.

         - 이처럼 개정안은 피해자의 주거 안정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장치를 마련하지만, 적용 범위와 작동 조건은 제한적이다. 법안은 사회주택 공동임대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민간임대주택 거주자나 가해자 명의의 주택에 거주하는 피해자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 또한 피해자가 폭력 사실을 드러내고 임대인 또는 법원 절차에 접근할 수 있어야 보호 조치가 작동한다는 점도 한계다. 따라서 신고부터 법원 절차까지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와 함께, 보복 위험 평가와 대체 주거 제공 방안이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

        ○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정안은 가정폭력 대응이 주거 정책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안전은 신고, 처벌, 보호 조치만으로 보장되기 어렵고, 주거 안정, 생계 기반, 자녀 돌봄, 지역사회 지원망과 함께 다뤄질 필요가 있다. 특히 저소득층과 주거 취약계층은 민간 주택시장에서 대체 주거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정폭력 피해가 발생했을 때 폭력에서 벗어나거나 안전한 생활 기반을 회복하는 데 더 큰 제약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피해자 보호는 여성·가족, 형사사법, 복지, 주거 정책이 함께 작동해야 하는 다분야 협력의 과제다. 이번 법안은 피해자가 폭력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주거를 잃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가정폭력 대응을 위기 개입 이후의 생활 안정과 회복 기반까지 확장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참고자료>
        ● GOV UK (2026.6.1.), “Domestic abusers to be evicted under new landmark housing law”, https://www.gov.uk/government/news/domestic-abusers-to-be-evicted-under-new-landmark-housing-law (접속일: 2026.6.18.)
        ● GOV UK (2026.5.13.), “THE KING’S SPEECH 2026”, https://assets.publishing.service.gov.uk/media/6a18713db95db968c8f3bbfd/The_King_s_Speech_2026_-_background_briefing_notes.pdf (접속일: 2026.6.18.)
        ● National Centre for Domestic Violence (2026), “Domestic Abuse Statistics UK”, https://www.ncdv.org.uk/domestic-abuse-statistics-uk/ (접속일: 2026.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