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인 | 모나시대학교 Global Studies 조교수·서울대학교 여성연구원 객원연구원
- 전 세계적으로 국가 차원의 인공지능(AI) 전략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각국 정부는 기술 혁신 촉진과 위험 관리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호주 역시 최근 「국가 AI 계획(National AI Plan)」을 발표하며 AI의 경제적 활용뿐 아니라 안전, 규제, 사회적 영향에 대한 포괄적 접근을 제시했다. 본 원고는 호주의 AI 정책이 여성 안전과 어떠한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살펴보고, AI 확산이 여성 대상 폭력 예방, 온라인 안전, 기술 접근성과 역량 강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젠더 불평등 및 젠더 기반 폭력에 갖는 함의를 검토한다. 아울러 한국과 호주의 협력 현황과 의미도 함께 짚어본다.
- 2025년 12월 발표된 국가 AI 계획은 경쟁력 있고 회복탄력적인 AI 기반 경제 구축을 목표로 하면서, 모든 지역과 산업, 공동체가 AI 발전의 혜택을 공유하는 ‘포용적 AI(inclusive AI)’를 강조한다. 특히 중소기업과 대도시권 외 지역이 AI 활용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점을 명시했다. 그러나 젠더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기술에 대한 접근성과 역량 형성 과정에서 기존의 불평등 구조가 어떻게 재생산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 호주의 국가 AI 계획은 세 가지 핵심 목표로 구성된다. 첫째, 지능형 인프라 구축과 국내 AI 역량 강화를 통해 산업 성장을 촉진하고 글로벌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다. 둘째, AI 도입 확대와 노동자 교육·훈련을 통해 기술의 혜택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셋째, AI로 인한 잠재적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규제·입법 체계를 정비하고, 책임 있는 AI 활용과 국제 협력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혁신 촉진과 위험 관리의 필요성을 동시에 제도적으로 인정한 정책적 균형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계획은 젠더, 지역,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AI의 혜택을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직장 내 AI 역량 강화(AI capacity building)를 주요 과제로 제시한다. 그러나 기술 접근성과 교육 기회는 기존의 사회·젠더적 불평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단순한 역량 강화 정책만으로는 격차 해소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여성의 STEM 분야 참여율, 돌봄 부담, 비정규·저임금 노동 비중 등 구조적 요인을 고려할 때, AI 정책의 실질적 포용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젠더 관점의 통합이 필수적이다.
- 한편, AI 확산은 새로운 형태의 위험을 동반한다. 딥페이크와 같은 AI 기반 범죄, 기술 매개 폭력(technology-facilitated abuse, TFA)은 이미 주요 정책 의제로 부상했다. 호주 정부 역시 국가 AI 계획에서 이러한 위험을 명시하며, AI가 새로운 안전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여성과 소수자 집단이 이미지 기반 성폭력, 온라인 스토킹, 디지털 명예훼손 등에 불균형적으로 노출된다는 점에서, AI 안전 정책은 단순한 기술 규제를 넘어 젠더 기반 폭력 예방 정책과 긴밀히 연계될 필요가 있다.
- 2026년 현재 호주는 혁신과 안전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AI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있다. 예컨대 온라인안전위원회(eSafety Commissioner)를 중심으로 기술 매개 학대에 대응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정부 기관에는 딥페이크·데이터 보안 침해 등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보호장치(guardrails)를 포함한 책임 있는 AI 사용 지침이 도입되고 있다. 이는 AI 거버넌스를 단일 규제 영역이 아닌 사법·기술·정책·연구가 연계된 다층적 정책 체계로 구성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미지 기반 폭력뿐 아니라 기술 매개 강압적 통제(technology-facilitated coercive control, TFCC) 문제에 관한 연구와 정책 논의도 확대되고 있다.
- 이러한 흐름은 국내 정책 차원을 넘어 초국가적 협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확산되는 젠더 기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간 정책 학습(policy learning)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호주 역시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관련 논의를 심화하고 있다. 호주 외교통상부(Department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DFAT) 산하 호주–한국 재단(Australia-Korea Foundation, AKF)는 2023년부터 한국–호주 간 젠더폭력 전문가 교류 사업을 지원해 왔으며, 2026년 2월에는 양국 연구자·정책 담당자·활동가들이 멜버른에 모여 기술 매개 폭력과 AI 안전을 둘러싼 공통 과제를 논의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이는 국경을 넘어 확산되는 디지털 젠더 기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교류와 상호 학습의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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