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인 | 모나시대학교 Global Studies 조교수·서울대학교 여성연구원 객원연구원
- 젠더 기반 폭력은 권력과 통제의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단순한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넘어 폭력의 재발을 방지하고, 구조적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가해행위자의 행동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남성 3명 중 1명이 친밀한 관계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러한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호주에서도 정책 초점이 기존의 보호(protection) 중심 접근에서 책임(accountability)과 행동 변화(behaviour change)로 확장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책·실무·연구 간 연계를 강화한 통합적 대응 체계를 구축·운영하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피해자와 아동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한다는 점이다.
- 호주의 가해행위자 개입은 전통적인 심리치료 중심 접근과 구별되는 특징을 보인다. 폭력을 개인의 분노, 스트레스, 알코올 문제 등 외부 요인으로 설명하기보다, 가해 행위에 대해 선택(choice)과 책임(responsibility)의 문제로 명확히 규정한다. 또한, 변화는 개인의 내면적 상태 변화 뿐만 아니라 행동과 권력 구조의 재구성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러한 관점은 가해 행위자 개입 프로그램의 핵심 교육 내용으로 반영되어 있다.
- 특히, 호주 전역에서 친밀관계 폭력 가해 남성을 대상으로 행동 교정 및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영리 기관 ‘No to Violence’은 사법 용어인 ‘가해자(perpetrator)’보다는 ‘폭력을 사용하는 남성(men who use violence)’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폭력을 개인의 특성이나 정신적 문제로 단순화하기보다 젠더 권력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택된 행동이며 따라서 가해 남성의 책임과 변화가 핵심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 호주의 대표적인 가해 행위자 행동 교정 모델은 전국에서 운영 중인 남성 가해 행위자 행동 변화 프로그램(Men’s Behaviour Change Programs)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일반적으로 14-20주 내외의 집단 기반으로 구성되며, 참여자 간 다양한 토론과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주요 내용은 폭력에 대한 재정의, 책임 인식 강화, 관계 내 평등성과 존중에 관한 교육 등을 포함한다. 특히 일방적인 강의 방식이 아닌 참여자 간 상호작용을 통해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인식과 논리를 해체하는 과정이 핵심 요소로 강조된다.
- 한편, 호주에서는 남성 가해 행위자 상담 연계 서비스(Men’s Referral Service)이라는 전국 단위 상담 서비스를 통해 폭력을 사용한 남성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인들도 전문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접근금지명령으로 주거지를 상실한 남성을 위한 임시 숙소도 운영하고 있다(2026.3기준 빅토리아주 한정). 이 외에도 고위험 가해자를 대상으로 사례관리(case management) 및 위험 모니터링 시스템도 병행하고 있다. 이는 단순 상담을 넘어 경찰, 법원, 서비스 기관 간 정보 공유를 기반으로 위험 수준을 지속적으로 추적·관리하는 방식이다.
- 다문화 국가인 호주의 특성상 이주민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개입 프로그램의 확대 또한 중요한 정책적 특징으로 나타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주 맥락에서는 경제적·법적 취약성과 젠더 권력관계가 결합되어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보다 정교한 개입이 요구된다. 이를 수행할 전문 인력 양성과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프로그램 설계에도 국가적 노력이 집중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젠더 기반 폭력 이력이 있는 경우 이민법에 따라 추가적인 배우자 초청이 제한되거나 금지될 수 있다.
- 반면, 파트너 비자 신청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한 경우, 폭력을 경험한 이주민은 가해자를 떠나더라도 영주권 절차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 조항이 마련되어 있다. 이 제도는 피해를 경험한 이주민의 체류 의존성 문제를 완화하고, 비자 관련 통제(migrant-related coercive control)를 방지하며, 구조적 폭력의 재생산을 차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 볼 수 있다.
- 다만 현재의 이민법이 모든 임시 비자 소지자를 포괄적으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점, 가해 행위자 상담 및 행동 교정 프로그램 모델이 서구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다양한 문화적 맥락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은 주요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 관련 프로그램의 효과성에 대해서는 호주 내에서도 다양한 논쟁이 존재한다. 특히, 단기적 태도 변화와 장기적 행동 변화 간의 괴리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기술 매개 폭력(technology-facilitated abuse)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인력과 교육 체계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도 한계로 제기된다.
<참고자료>
-Domestic, Family and Sexual Violence Commission (2025). New ten to men data shows one in three men report using intimate partner violence. https://www.dfsvc.gov.au/news/new-ten-men-data-shows-one-three-men-report-using-intimate-partner-violence (접속일: 2026.3.18.)
-Elliott, K., Block, K., Cho, H., & Murdolo, A. (2025). ‘It’s really important that we listen to them’: engaging immigrant men in family violence prevention, Journal of Family Violence. 10.1007/s10896-025-00897-y
-No to Violence (2026). Men’s Behaviour Change Programs. https://ntv.org.au/mrs/mens-behaviour-change-programs/. (접속일: 2026.3.18)
-No to Violence. (2026). Men’s Referral Services. https://ntv.org.au/mrs/ (접속일: 2026.3.18)
-한겨레 (2026). 호주에선 ‘친밀 관계’ 가해자에 임시숙소 교육…한국은 피해자가 집 나가.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246533.html (접속일: 2026.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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