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디지털 전환기에 대응한 관계.성.건강 교육(RSHE) 지침 개정
이지원, 런던열대의학위생대학(London School of Hygiene & Tropical Medicine) 개발보건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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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5일, 영국 교육부는 초.중등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관계.성.건강 교육(Relationships, Sex, and Health Education, 이하 RSHE) 법정 지침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번 지침은 2019년 판 RSHE 지침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디지털 사회의 급속한 변화와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교육적 대응을 강화하고, 내용을 보다 실천적이고 포괄적인 방향으로 확장했다. 특히 딥페이크, 온라인 성적 범죄, 인셀(Incel, Involuntary Celibate) 문화 등 청소년기 학생들이 직면하고 있는 디지털 기반 위협 요소들을 반영하여, 학교 현장에서의 조기 예방 교육과 성평등 가치 내면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하였다. 이번 개정안은 2025년 9월 신학기부터 전면 시행될 예정이며, 여성 보호와 성평등 강화를 위한 주요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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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중심의 디지털 윤리 교육을 통한 인셀 문화와 온라인 여성혐오 대응)이번 지침은 청소년 사이에서 여성혐오와 인셀 이념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회적 우려를 반영하여, 학생들이 온라인상의 유해 콘텐츠에 노출되었을 때 이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한다. 교육부가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 시점 전 일주일간 11세~18세 학생 중 37%는 여학생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고, 54%는 여성 혐오적 발언을 직접 목격했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학교는 학생들에게 AI 챗봇, 딥페이크, 음란물 생성 등의 디지털 위험 요소에 대한 실체와 형사적 결과를 인식시키고, 이러한 콘텐츠가 개인의 성 윤리와 타인에 대한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성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온라인상의 잘못된 정보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고, 타인을 해치지 않기 위한 디지털 시민성 교육이 RSHE 교육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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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남성성(masculinity) 형성을 위한 교육 설계) 개정 지침은 남학생을 단순히 ‘잠재적 가해자’로 낙인찍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유통되는 왜곡된 관계 모델에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각을 기르도록 한다.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친구 및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 존중과 배려의 개념을 학습하고, 중등교육 단계에서는 건강한 남성 롤모델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통해 관계, 감정 표현, 동의의 개념을 점진적으로 익히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감정 억압이나 해로운 성 고정관념 등 왜곡된 남성성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고, 존중에 기반한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건강한 남성성의 개념을 중심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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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정권을 위한 실천적 여성 건강 교육 강화) 여학생들이 경험하는 신체적 변화와 약물을 이용한 성폭행(drug-facilitated sexual assault) 위험 대응에 관한 교육도 대폭 강화되었다. 자궁내막증, 생식 건강, 월경 등 여성 건강과 관련한 사실 기반의 정보 제공이 포함되었으며, 음료에 알코올이나 약물을 몰래 타는 스파이킹(spiking), 메탄올 중독 등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예방 교육이 추가되었다. 또한 회복탄력성(resilience), 자기 보호 능력 등 자기 결정권을 중심으로 한 건강 교육이 포함되어, 모든 학생이 자신의 몸과 권리를 인식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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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개정 RSHE 지침은 단순히 성과 건강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젠더 기반 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영국 정부가 추진하는 ‘여성과 소녀에 대한 폭력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라는 변화 계획과도 맞닿아 있다. 브리짓 필립슨(Bridget Phillipson) 교육부 장관은 이번 개정을 통해 “아이들이 현대 사회에서 존엄하고 예의 바른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이라고 강조하며, RSHE 교육을 성평등 사회를 위한 교육적 투자로 재정립하였다. 이번 지침 개정은 단순한 지식 전달형 성교육을 넘어 사회 구조, 디지털 환경, 젠더 권력이라는 복합적인 맥락을 아우르는 통합적 교육 체계의 구축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성평등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책적 전환점이자 실행 전략으로서 중요한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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