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성범죄 관련 조치 확대 계획
        등록일 2025-02-27

        프랑스, 성범죄 관련 조치 확대 계획

        곽서희 레이든 대학교(Leiden University) 정치학과 강사(Lecturer)

        • 2024년 11월 말, 프랑스 정부는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제도적 개선 조치를 발표했다. 이와 같은 프랑스 정부의 발표는 특히 약물을 사용한 성범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어로는 대개 chemical submission, 직역하면 ‘화학적 복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의미전달과 최근 한국 언론에서 사용하는 용어 동향을 고려하여 본 원고에서는 ‘약물 이용 성범죄’로 표현했다.
        • 살리마 사 평등정책 장관(Equality Minister Salima Saa)은 정부가 피해자 지원제도 확대, 인식 제고 사업 등을 추진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 예로 성범죄 피해자는 반드시 경찰서로 올 필요 없이 병원에서도 사건을 접수할 수 있는 범위가 확대된다. 현재는 프랑스 전역에서 236개 병원에서만 허용되지만, 사(Saa) 장관에 따르면 2025년 말까지 377개로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응급진료센터와 산부인과를 갖춘 거의 모든 의료시설이 이에 해당된다. 정부는 이러한 조치로 성범죄 피해자가 보다 신속하게 치료를 받으면서 사건을 신고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 또한 최근 발표한 계획에서는 약물 이용 성범죄에 대한 대국민 인식 제고 캠페인도 포함하고 있다. 미셸 바르니에(Michel Barnier) 총리 또한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약물이용 성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대응할 방안을 발표했다. 바르니에 총리가 세계 여성 폭력 철폐의 날을 기념하여 파리 4구에 위치한 한 공립병원에서 연설하면서 포함된 내용으로, 바르니에 총리는 여성 대상 폭력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용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더 많은 조치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정부는 국가 건강보험을 통해 일부 지역에서 국가 지원 약물 탐지 검사 키트를 시범적으로 제공하거나 키트 비용을 환급해 주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다만 구체적인 시행 일정이나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프랑스의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은 최근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던 한 사건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바로 약 50년간 함께 해온 부부 사이에서 발생한 성범죄이다. 남편인 도미니크 펠리코(Dominique Pelicot)는 오랜 기간에 걸쳐 본인의 아내를 약물에 취하게 만들고 아내가 의식을 잃은 사이 수십 명의 다른 남성들에게 성폭행당하게 한 사건이다. 남편은 최소 10년 넘게 이런 범죄를 저질러 왔고, 심지어 영상 촬영까지 하고 저장해 두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아내이자 피해 여성인 지젤 펠리코(Gisèle Pelicot)는 합의 없이 약물을 주입하고 성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성범죄(chemical submission)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본인의 이름과 얼굴을 당당하게 공개하고 재판에도 출석했다. 펠리코 부인은 본인 신상 공개와 공개재판 전환에 동의하면서 “성범죄 피해 여성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숨으려 하지 않길 바란다며 수치심을 느낄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바르니에 총리 역시 정부의 계획을 설명하면서 몇 달간 프랑스 국민들은 지젤 펠리코의 놀라운 용기에 깊이 감동하였다고 직접 해당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 본 사건에 대한 재판은 15주가량에 걸쳐 진행되었고, 법원에 인파가 모여들고 언론에서 재판 과정을 중계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2024년 12월 말, 남편은 2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기타 49명도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중 17명은 본인들도 성폭행을 저지르도록 조종당한 셈이고 피해 여성이 동의하지 않고 약물에 취해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면서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공분을 사기도 했다.
        • 앞서 언급한 프랑스 정부의 약물이용 성범죄 인식 제고 캠페인은 지젤 펠리코의 딸과 약물 이용 범죄 지원 서비스인 Centre de référence sur les agressions facilitées par les substances(CRAFS)가 공동 설립한 비영리단체 M'endors Pas에서 주도할 예정이다. 여기에 프랑스 약사협회(French Order of Pharmacists)도 파트너로 협력할 예정이다. M'endors Pas는 나를 (약물로) 재우지 마라는 의미의 슬로건으로,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약물이용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에게 상담 및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2023년 조직되었다.
        • 2024년 11월에 발표된 프랑스 내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484,000명의 여성 응답자가 2023년에 파트너나 헤어진 전 파트너에게서 폭력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123,000명가량은 성폭행과 같은 성범죄였고, 109,000명은 신체적 폭력, 339,000원은 성추행이나 공공 음란 행위와 같은 비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프랑스 내 여성 대상 폭력 철폐와 안전 보장은 앞으로도 적극적인 제도적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정부는 가정 폭력 피해자를 위해 현 거주지에서 피해 있을 수 있도록 긴급 지원 예산으로 2025년까지 1,300만 유로에서 2,000만 유로로 증액할 예정이다. 실제로 그동안 정부가 시행해 온 관련 조치는 2023년 말 도입된 이후 그동안 약 3만 3천 명의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아 장관의 발표에 따르면, 프랑스는 양성평등을 위한 예산을 10% 증액했고 총 8,510만 유로에 달한다. 
        • 하지만 이 금액은 여성단체들의 요구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여성단체들은 26억 유로 예산 배정과 더불어 현재 단편적이고 불완전하다고 비판하는 양성평등 관련 제도를 보다 포괄적인 법적 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여성 대상 폭력이 다양해지고 광범위해짐에 따라 전문가 교육, 심리 트라우마 센터 설립, 피해 여성과 아동을 위한 보호시설, 인식 교육 등 모든 유형에서의 폭력 문제를 다루고 해결해야 하는데, 8,500만 유로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작년 11월에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성범죄와 여성 살해를 비판하는 대규모 시위를 개최하기도 했는데, 파리와 여러 도시에서 개최된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정부의 미온적 조치를 비판하면서 양성평등 및 여성 대상 폭력과 범죄 문제 해결을 위한 예산 확대를 주장했다.
        • 한국에서도 합의 없이 약물을 주입하고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시도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점차 만연해질 수 있는 성범죄 유형이라는 점에서, 대국민 인식 제고와 구체적인 지원 및 대응 제도를 추진하는 프랑스 사례를 적극 참고할 만 할 것이다.

        <참고자료>
        ○ AP News (2024.11.23) "Thousands protest against femicides and sexual and sexist violence in France", https://apnews.com/article/pelicot-sexual-violence-rape-france-paris-8b726b2c584f0f1c880cb7152fac7110 (접속일: 2025.02.22.) 
        ○ BBC (2024.12.30) "Gisèle Pelicot rape case: 17 men appeal against convictions", https://www.bbc.com/news/articles/ckg1plx12x2o (접속일: 2025.02.22.) 
        ○ France 24 (2024.11.25) "France unveils new measures to combat violence against women", https://www.france24.com/en/live-news/20241125-after-mazan-france-unveils-new-measures-to-combat-violence-against-women (접속일: 2025.02.22.) 
        ○ France 24 (2024.11.26) "France unveils new measures to protect women in wake of Pelicot affair", https://www.france24.com/en/france/20241126-france-unveils-new-measures-to-protect-women-in-wake-of-pelicot-affair (접속일: 2025.02.22.) 
        ○ RFI (2024.11.25) "France announces new measures to combat violence against women", https://www.rfi.fr/en/france/20241125-france-announces-new-measures-to-combat-violence-against-women (접속일: 2025.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