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의사결정직 성별 균형을 위한 평등법 발효
곽서희 레이든 대학교 정치학과 강사
- 2024년 8월, 스페인은 남녀 평등한 대표성에 관한 법(Organic Law 2/2024, of August 1, on equal representation and balanced presence of women and men)을 도입했다. 일명 성평등법(Parity Law)이라고도 칭하는 이 법은 정치 및 경제 분야에서 성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다. 본 원고에서는 해당 법의 제정 배경과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 이번에 발효된 스페인의 성평등법은 공공기관이나 공공기관 내 의사결정기구가 어느 한 성별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특정 성별(대개 남성)의 비율이 60%를 초과하거나 다른 성별의 비율이 40% 이하로 떨어져서는 안된다. 공공분야로는 정부 부처, 입법 및 사법기관, 공영 방송국 등이 해당된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는 선거후보자 명부에서 성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이 주요 추진 분야 중 하나이다. 앞으로 스페인에서 치러지는 모든 선거에서 각 정당은 후보자 명부에 남성과 여성을 번갈아 지명하는 일명 '지퍼형 명부(zipper list)'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이는 한국의 공직선거법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및 지방의회 의원 선거 후보자 추천시 50% 이상을 여성으로 하고 후보자 명단의 홀수 자리에 여성을 할당해야 한다는 규정과 유사하다. 또한, 인구 3천 명 미만을 둔 지방자치단체는 소규모 인구를 고려하여 의사결정기구 구성 시, 위에서 언급한 성별 비율 보장 의무가 면제된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는 후보자 명부에서 남성이 60%를 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야 한다.
- 민간 분야는 상장 기업뿐만 아니라 직군별 이해단체나 비즈니스 협회, 노동조합도 포함한다. 2026년 6월 30일까지는 스페인 주식시장(IBEX) 시가총액 기준 상위 35개 상장 기업에 적용된다(법 시행일 기준 종가로 결정). 그리고 2027년 6월 30일까지는 나머지 모든 상장 기업에 적용된다.
- 이번에 발효된 성평등법은 유럽연합(EU)이 발표한 지침(Directive (EU) 2022/2381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of 23 November 2022 on improving the gender balance among directors of listed companies and related measures)을 기반으로 마련되었다. ‘의사결정직 성별 균형 개선을 위한 지침'이라고도 불리는데, 유럽연합 내 상장기업이은 의사결정을 맡은 고위직 임원의 성비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본 지침은 2026년 6월 30일까지 유럽연합 내 모든 상장기업의 경우 비상임 이사에 해당하는 직급(non-executive director positions)의 40% 또는 기업 내 모든 이사 직급(all director positions)의 33%는 소수를 차지하던 성별로 임명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질적으로 소수 성별은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기업은 성별 대표성 현황에 관한 정보를 정기적으로 공개 및 보고할 의무가 있으며, 해당 지침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유럽연합 측에서 벌금 및 시정에 관한 조치를 부과할 수 있다. 본 지침의 내용은 상장 기업에 적용되고, 유럽연합이 기존에 수립한 중소기업 기준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은 예외이다(예, 근로자 수 250명 이하, 연 매출 5천만 유로 이하 등). 스페인은 이러한 유럽연합의 지침을 국내법에 도입 및 이행하기 위해 성평등법을 추진하고 발효한 것인데, 오히려 스페인의 법이 유럽연합(EU)의 지침보다 적용 범위가 더 넓고 세부적인 의무조항 내용들을 추가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 본 법은 앞서 소개한 정치 및 민간분야 의사결정직 내 성별 균형 외에도 각종 스포츠 종목 협회나 리그에서 성희롱을 예방하고 성희롱 자체를 중대한 사안으로 인지하는 프로토콜(protocol)을 시행하도록 의무화하는 조항도 추가했다. 또한 여성 선수의 임신 및 출산 동안 계약을 연장하는 내용과 같이 모성 관련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일부 제도를 개정했다.
- 이번에 발효된 성평등법의 성비 할당에 관한 의무 조항을 두고 스페인에서는 찬반 의견이 나뉘고 있다. 찬성 입장은 이러한 제도적 틀을 도입해야 아직 사회 곳곳에 만연한 성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그동안 의사결정직과 같은 높은 직급에서 여성 대표성이 낮았고, 자연적으로 개선되기를 바라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어느 정도 제도적 강제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면 향후 다른 국가에도 좋은 정책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 반면 반대 입장은 모든 선거에서 후보자 명부 작성, 기업 이사회 임원 임명 과정에서 할당된 비율 때문에 오히려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성별을 기반으로 적임자를 고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역효과가 날 수 있고, 제도가 사회에 성별 균형을 일률적으로 강요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본 법에 반대하는 측은 이러한 강제성이 되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정한 성평등 실현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본 법이 8월부터 시행된 만큼, 앞으로 스페인 정치, 공공 및 민간 분야에서 이행되는 방식과 그 결과는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Euro Weekly News (2024.8.23.), "Spain introduces the Parity Law to address gender inequality in the country. "https://euroweeklynews.com/2024/08/23/spain-introduces-the-parity-law-to-address-gender-inequality-in-the-country/ (접속일: 2024.10.22.)
■ European Union (2022), "Directive (EU) 2022/2381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of 23 November 2022 on improving the gender balance among directors of listed companies and related measures", https://eur-lex.europa.eu/legal-content/EN/TXT/?uri=CELEX%3A32022L2381 (접속일: 2024.10.22.)
■ State Agency for the Official State Gazette (스페인 관보 웹사이트), “Ley Orgánica 2/2024, de 1 de agosto, de representación paritaria y presencia equilibrada de mujeres y hombres (Organic Law 2/2024, of August 1, on equal representation and balanced presence of women and men)”https://boe.es/diario_boe/txt.php?id=BOE-A-2024-15936 (접속일: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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