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비동의 강간죄’ 관련 제도적 논쟁
        등록일 2024-05-24

        프랑스, ‘비동의 강간죄관련 제도적 논쟁

        곽서희 레이든 대학교(Leiden University) 지역학과·정치학과 강사(Lecturer)
         
        • 프랑스 현행법에서는 성폭력을‘폭력, 강압, 위협, 급습과 같은 방식으로 타인에 의해 성관계를 당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으며, 합의 여부는 법적으로 정의하는 범위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동안 프랑스 시민사회에서는 이를 두고 합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해왔다. 단, 프랑스에서는 형법에 의거하여 만 15세 이하 아동과의 성관계의 경우, 합의 여부 상관없이 불법이다. 본고에서는 현재 프랑스의 비동의 강간죄 관련 제도적 논의 내용과 쟁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 2024년 5월 프랑스에서는 정치, 언론, 정치, 문학, 연예계 등 140명이 넘는 인사들이 프랑스 정부의 포괄적인 성폭력 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공동 서명 및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해당 입장문을 통해 프랑스 정부가 그동안 지속되어온 미투(#MeToo) 운동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실패했고, 사회적으로 성차별주의 및 성폭력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현 사법제도는 이를 해결하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이어 입장문에서는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성폭력 사건을 신고하더라도 실제로는 처벌되지 않고 끝나버리는 경우가 만연하다면서, 2022년 성폭력 고소 사건의 불기소 처분율이 무려 94%에 달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따라 포괄적 성폭력방지법 제정을 통해 비동의 강간죄 등의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폭력범의 경우 모든 사건에서 재판에 세울 것과 보다 강력한 처벌 이행, 피해자 보호 조치 확대, 전문 수사 인력 확대 등을 촉구했다.
        • 프랑스 대표 일간지 중 하나인 르 몽드(Le Monde)의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사법부의 통계상 성폭력으로 유죄판결이 확정된 사건은 2017년부터 증가 추세를 보여왔으며, 2017년 960여건에서 2022년 1,260건으로 30%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반면 성폭력으로 실제 기소되는 경우는 아직도 적은 편인데, 그 이유 중 하나로 법적 조항 문제가 지적되어왔다. 
        •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은 비동의 강간죄 조항에 원론적으로는 찬성하며,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4년 3월 8일, 임신중지에 관한 자유를 헌법에 포함하는 헌법 개정 관련 행사에서 이를 언급했다. 이후 여러 국내외 언론에서는 프랑스 정부가 비동의 강간죄에 대한 태도가 변한 것인지를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프랑스는 유럽연합(EU)이 유럽연합법상 합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성폭력으로 정의하는 조항에 공식적으로 반대한 회원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2024년 2월 1일, 프랑스 상원 내 여성권익위원회는 청문회를 열었다. 본 청문회에서 에릭 듀퐁-모레티(Éric Dupond-Moretti) 사법부 장관(Minister of Justice)은 유럽연합의 젠더기반폭력 관련 법 내 성폭력 조항에서 합의 여부를 포함하는데 프랑스 정부가 반대하는 것을 두고 "비동의 강간죄 조항에 반대한 것은 유럽연합의 권한(competence) 범위와 행사에 대한 관점에 입각하여 내린 입장이며, 일각에서 프랑스가 구시대적 발상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여성이 성폭력 문제에 있어 법적으로 보다 강력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고 언급했다.
        • 반면 듀퐁-모레티 장관은 제도적 틀에서 합의 여부의 개념을 포함하는 것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형사법의 법적 역할은 가해자의 법적 책임을 규정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합의 여부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폭력 관련 법 조항에 합의 여부의 개념을 포함하게 되면, 성관계를 지나치게 계약관계처럼 제한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위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이러한 듀퐁-모레티 장관의 발언에 대해 조세린 앙투완(Jocelyne Antoine) 상원의원은 합의 여부를 조항에 포함하는 것은 오히려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라며 반박했다. 
        • 이 밖에도 프랑스에서 선출된 유럽의회 나탈리 콜랑-우스털리(Nathalie Colin-Oesterlé) 의원은 "합의가 없는 성관계를 성폭력으로 규정하기 위해 2년여간 내부적으로 고군분투해왔다. 현 프랑스 정부는 형법에 합의 개념을 포함하는 것이 피해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알고 보면 피해자를 그런 논리를 펼치는 수단 정도로만 고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의 멜라니 포겔(Mélanie Vogel) 상원의원은 유럽연합의 법안 통과에 반대한 마크롱 대통령이 갑자기 한 달 만에 정반대의 발언을 했다며, 이는 냉소적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위와 같은 맥락을 고려할 때, 프랑스 정부가 시민사회의 포괄적 성폭력 방지법 제정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형법에 비동의 강간죄 조항을 포함할 것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이르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프랑스 정부가 어떤 행보를 취할지 좀 더 신중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Euractive (2024.3.14.), "France’s Macron faces backlash over U-turn on legal definition of rape", https://www.euractiv.com/section/health-consumers/news/frances-macron-faces-backlash-over-u-turn-on-legal-definition-of-rape/ (접속일: 2024.5.20.)
        ■ Euractive (2024.2.1.), "Minister of Justice clarifies France’s position over rape inclusion in EU directive", https://www.euractiv.com/section/justice-home-affairs/news/minister-of-justice-clarifies-frances-position-over-rape-inclusion-in-eu-directive/  (접속일: 2024.5.20.)
        ■ The Guardian (2024.5.14.), "‘Impunity is growing’: French celebrities call for law to crack down on sexism and sexual violence“, https://theguardian.com/world/article/2024/may/14/french-celebrities-law-crackdown-sexism-sexual-violence  (접속일: 2024.5.20.)
        ■ Le Monde (2024.3.14.), "Macron promises to add 'consent' to France's rape law", https://www.lemonde.fr/en/france/article/2024/03/14/macron-promises-to-add-consent-to-france-s-rape-law_6617206_7.html (접속일: 2024.5.20.)
        ■ Le Monde (2024.3.19.), "The debate over adding consent to France's legal definition of rape", https://www.lemonde.fr/en/france/article/2024/03/19/the-debate-over-adding-consent-to-france-s-legal-definition-of-rape_6632673_7.html (접속일: 2024.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