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도 여성연구의 현황과 과제
        저자 이은영
        발간호 제034호 통권제목 1992년 봄호
        구분 ARTICLE 등록일 2010-01-27
        첨부파일 91년도 여성연구의 현황과 과제.pdf ( 4.91 MB ) [미리보기]

        머리글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2월에 그 해의 연구성과를 짚어보는 일은 연구의 도약을 
        위한 필수적 작업이 될 것이다. 1991년은 80년대를 정리하고 90년대를 형성해 
        가는 창조적인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91년이 이러한 
        예사로운 의미 이상의 어떤 것을 내포하고 있으리라는 것이 우리의 공통된 
        인식이다. 독일의 흡수통일, 소비에트연방의 약화 등 사회주의권의 변화는 
        '91년에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소비에트연방이 붕괴의 길을 
        달리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착찹한 마음으로 세계를 주시하고 있다. 
        진보이론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던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주의권의 변화를 역전의 
        호기로 삼으려한다. 그리고 각 분야에 새로운 조류로 등장한 포스트 모더니즘도 
        진보적 여성연구자에게 힘든 과제를 던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진보적 
        여성연구자가 해야 할 일은 우선 겸손한 자세로 그간 추구한 목표와 실행한 
        사업을 돌아보고 그것들이 우리 사회현실에 적합하였던가를 음미해보는 것이다. 

        이 논문은 원래 91년도의 여성문제의 출판동향을 파악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91년에 발간된 단행본(번역서, 대중서 포함), 학위논문, 논문, 각 
        여성연구회 기관지, 심포지움 등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신문기사 등 언론보도는 
        제외하였다. 

        단행본의 부문에서는 개론서, 분야별 전문서, 대중서 등이 다양하게 
        출판되었다는 점, 그리고 우리 저자의 손으로 쓰여진 우리문제에 관한 우리식의 
        여성학서가 많았다는 점이 특색이었다. 한국여성연구회가 지은 
        [여성학강의](동녘 학술총서2)는 80년대 이후에 형성된 진보적 여성해방론에 
        입각한 강의교재로서 여성문제를 본질, 사회구조, 성역할, 가족, 사랑, 노동, 
        농민, 법, 문학, 이념, 역사 등의 측면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분야별 
        전문서로서 한국여성연구회, 한국여성노동자회, 인천여성노동자회의 
        [여성노동자와 임금](동녘문고 9),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본 가족](배리 
        쏘온·매릴린 얄롬 엮음, 권오주 등 4명 옮김, 한울아카데미 여성학강좌 3) 등이 
        주목을 끌었다. 대중서로는 오숙희의 [내가 만난 여자](그린비), 서진영의 
        [여자는 왜](동녘선서 65)가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으며, 그밖에 [90년대의 
        아담과 이브](우에노 치즈코 지음, 이제호·야노 유리코 옮김)등이 출간되었다. 
        특기할 만한 일은 학회지, 연구단체의 무크지 등이 여러 종류 정기적으로 
        발간되어 시사성이 있으면서도 지속성을 갖는 읽을 거리를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학회의 [한국여성학], 여성개발원의 [여성연구], 여성연구회의 
        [여성과 사회], 또 하나의 문화그룹의 [또 하나의 문화], 민우회의 
        [사무직여성]외에 여성한국사회연구회의 [여성·가족·사회]가 창간되었다. 
        그리고 여성전문잡지가 아닌 [창작과 비평]등에서도 여성문제를 소재로 한 
        글들을 빈번히 실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출판물은 여성연구자들의 논쟁의 장을 제공했다. 출판물에 나타난 
        이론논쟁에서 우리는 여성연구집단간의 대립과 조화를 읽을 수 있다. 문학비평의 
        장을 통한 '또 하나의 문화'와 '한국여성연구회'의 논쟁은 팽팽한 대립으로 
        치닫는 반면, 여성해방 이념에 관한 좌담회에서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과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은 그들의 입장차이에도 불구하고 조화를 찾는 자세를 
        보였다. 후자의 좌담회를 보면서 우리는 진보적 여성연구자 사이에 있었던 
        편가르기가 꼭 필요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여성학의 
        방법론에 관한 논의도 91년도에 본격적으로 행해지기 시작하여 한국여성학회에서 
        방법론과 관련된 주제들이 여럿 발표되었다. 

        여성연구의 영역이 다양화되고 각 영역별로 주제, 시각이 구체화·전문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이러한 성과는 각 연구집단내의 공동연구에 힘입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 특색으로 나타났다. 노동분야에서는 한국여성연구회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한국여성연구회는 80년대 이후에 바뀌고 있는 여성노동의 기본적 
        성격변화를 '대외의존적 공업화와 여성노동의 성격'이란 글로써 분석하고, 
        [여성과 사회]2호에서 '여성노동과 모성보호'를 특집으로 다루고 '일하는 
        어머니의 아이키우기'에 관한 좌담을 실었으며, 그밖에 90년대에 여성노동계에 
        밀어닥친 대량해고, 임시직의 증가, 시간제노동의 확산 등 고용불안정 현상을 
        해부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악화되는 여성고용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가족분야에서는 여성한국사회연구회가 활발히 발표하였다. 
        여성한국사회연구회가 창간한 무크지 [여성·가족·사회]는 여성해방론과 
        사회구조적 인식을 바탕으로 가족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전문지로서 
        출범하였다. 이 연구회는 올해 '부모자녀관계'에 관한 심포지움을 통해 우리의 
        사회구조 속에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어떤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를 
        다각적으로 고찰하였다. 문화분야에서는 박완서 비평이 본격화되어 한국 
        여성연구회와 또하나의 문학 사이의 여성해방론·문학비평론의 차이를 보였고, 
        한국여성연구회는 그 밖에 다독서인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대한 비평을 
        발표하는 등 여성비평론의 정립을 모색하기 위한 기초작업에 몰두했다. 올해 
        대중출판물로서 새롭게 두드러진 분야 중 하나가 '성'에 관한 연구였는데 이 
        분야에는 또 하나의 문화 모임이 앞장섰다. 또 하나의 문화는 [새로 쓰는 사랑 
        이야기](7호)와 [새로 쓰는 성 이야기](8호)를 발간하였는데, 남녀간의 사랑, 
        성관계, 결혼, 매춘 등을 여성적 시각에서 재음미함으로써 심리적, 문화적 
        측면에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설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각 집단이 스스로 
        의식했건 아니건 여성연구집단 사이에 연구의 기초이론, 방법론, 과제설정에 
        차이가 존재했음이 출판물에서 드러났다. 

        '91년 여성운동계의 동향도 여성학연구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으므로 간단히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 '91년에 많이 다루어진 주제는 노동, 성폭력, 군축 및 
        평화, 통일 등이었다. 노동분야는 여성운동계가 이미 전부터 중점적으로 다루어 
        온 주제였는데 '91년의 노동현실의 변화에 맞추어 시의성있게 내용을 구성했다는 
        점이 특색이며 노동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감소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겠다. 성폭력은 여성운동집단간의 입장차이에도 불구하고 호응이 높았던 
        주제였다. 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상담소운영, 가해자에 대한 처벌법규와 
        강화요청의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군축 및 평화문제에 관하여도 군사문화의 
        배제, 방위비예산의 감소와 여성복지의 증대, 핵무기 보유반대 등의 
        세부과제들이 다루어졌다. '91년 여성운동계에서 가장 역사적인 업적이 11월의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으리라. 
        북한여성과 일본여성이 서울에 와서 우리와 더불어 통일과 평화를 다짐한 
        '최초의 남북민간회담'이었으니 말이다. 이 토론회에서는 북측이 '통일과 여성', 
        남측이 '가부장제문화의 여성', 일본측이 '평화의 여성'을 발표하였다. 이에 
        관해 언론은 "팽팽한 격론-한때 긴장…'이견 확인'만도 큰 수확"이라는 총평을 
        하였다([여성신문] '91.2.16). 

        이상에서 보듯이 '91년 우리 여성연구자들은 학계 및 대중을 상대로 자기 
        목소리로 여성문제를 피력했고, 여성연구집단들은 공동연구를 통해 연구의 질을 
        높이고 영역을 확대했으며, 각 집단 사이에는 출판물을 통한 논쟁과 교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여성연구자의 이러한 자기현신은 다음 단계로 내년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될까. '91년 여성연구의 의의는 후세의 연구자들에 의해 
        역사적인 맥락에서 규명될 것이다. 어쨌든 '91년은 '여성연구에 애정과 관심을 
        쏟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주목할 가치있는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여성해방의 기초이론에 관한 '91년의 연구 
        ■진보적 여성해방론의 대립과 화제 
        여성해방론의 이론논쟁은 문학비평의 장에서부터 첨예하게 전개되었다. 
        조혜정교수가 박완서에 대한 비평들을 검토하는 글을 발표하였는데, 조혜정은 이 
        글에서 여성연구집단간에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차이가 매우 크다고 지적하고 
        자기의 입장을 밝혔다(조혜정, "박완서 문학에 있어 비평은 무엇인가," 
        [작가세계], 1991 봄, 97면 이하). 조혜정이 이 글에서 
        여성사연구회(한국여성연구회로 통합됨)의 문학분과에 대해 여성해방론 자체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 부분이 논쟁의 포문을 연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해 
        전승희씨가 다시 문학비평과 여성해방론 양측면에서 반론을 제기함으로써 논쟁은 
        격화되었다(전승희, "여성문학과 진정한 비판의식," [창작과 비평], 1991 여름). 

        조혜정은 박완서에 대한 부당한 평론의 세번째 유형으로써 여성사연구회의 
        여성문학론(김영혜외, '여성문학정립을 위한 서론,' [여성운동과 문학], 1988)을 
        들고 그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이 글에서 조혜정은 여성사연구회와 또 하나의 
        문화 사이에 여성해방의 기본입장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여성사연구회에 대해 "민족문제와 민중문제 등 다른 모순과 중첩되지 않은 
        사소한 여성의 억압현상에 무관심하며 기층여성의 시각에 서지 않는 한 
        여성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입장에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에 또 하나의 문화의 입장을 밝히는 부분에서는 "성모순이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의 유지기재로 이용되고 있다는 공동의 인식기반 위에서 출발, 여성들이 
        겪어온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심리적 차원의 억압경험들이 
        여성문학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다른 글의 인용으로 대신하고 
        있다(고정희, "여성문학 어디까지 왔는가?:소재주의를 넘어 새로운 인간성의 
        실현으로," [문학사상], 1990, 2). 이 글에서 조혜정은 비록 위의 글을 
        인용하기는 했지만 그가 말하는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에 관한 자신의 입장은 
        전혀 밝히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배제함으로써 그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고 있다. 결국 이 글에서 나타난 조혜정의 견해는 
        "여성·남성이라는 이분구조로 고정되어 있는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관점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그 후 전승희는 한국여성연구회의 시각이 "여성문제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생산양식과 유기적 연관을 맺고 그에 규정당한다고 보면서 상대적 자율성을 
        인정하는 입장"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조혜정이 여성문제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나머지 자본주의를 가부장제의 종속변수로 보고 있는 것에 대하여, 계급이라는 
        근본적인 요인을 도외시한채 성차에 따른 특성만을 상정하는 것은 자본이 
        여성에게 할당한 역할을 무반성적으로 용인하는 결과로 된다고 반박한다. 결국 
        조혜정의 입장을 "여성의 범주를 초계급적이고 동시대적으로 보는 관념론적 
        인식을 보이며 그것은 곧 생물학적 결정론과 다원주의, 상대주의, 경험주의 등 
        자유주의의 여러 변형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정리한다. 그리고 그러한 
        입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여성 개개인의 다양한 체험을 바탕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관통하는 원리로 수렴시키지 않고 평등성과 
        다양성만을 주장하는 것은 상대주의와 공식적 다원주의의 위험에 빠진다고 
        경고한다. 이론 아닌 체험을 강조하는 것도 직접체험만을 체험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단순논리로서 경험주의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한다. 

        이상의 조혜정·전승희 문학논쟁에서 우리는 문학비평이라는 매개를 통해 
        드러난 여성해방그룹의 입장차이를 읽을 수 있었다. 이 논쟁은 서로 상대방과 
        자신의 차이를 주장하고 상대방의 논리를 비판하는 데에서 그쳤으며, 상호 
        접근가능성은 보여주지 않았다. 우리는 이 논쟁을 보면서 한국의 여성해방론 
        사이에 상당히 높은 벽이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입장이 다른 여성연구자·여성운동가들이 한 자리에 앉아 그들 이론의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장래 여성운동의 방향을 논의해보는 좌담회가 
        있었다(이미경/조옥라/정현백/김영희, "변화하는 세계와 여성해방의 
        이념(좌담)," [창작과 비평] 1991 겨울). 창비좌담은 80년대와 90년대의 
        여성운동을 이론적·이념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토론을 전개해 나갔다. 
        여성해방의 이념적 측면은 여성연구자라면 누구나 알지만 명확히 분석해 내기 
        곤란했던 부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여성연구의 현실적 여건을 감안할 때 
        글로써 분류하기 미묘했던 부분이었다. 이 좌담에서는 80년대 여성운동의 특징을 
        '진보적 여성해방론'으로 표현하고, 이 진보이론을 다시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MF)과 사회주의 여성해방론(SF)으로 대별했다. 그러나 이 두 
        진보이론은 대립관계에 놓여 있지 않으며, 만약 여성운동계에 대립이 생긴다면 
        그것은 '전체 사회변화를 궁극적 목표로 삼는 운동'과 '성모순 타파만을 목표로 
        삼는 운동'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좌담에서는 사회주의권의 변화에 따른 여성현실의 변화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참석자들은 사회주의가 생산노동과 가사노동의 이중부담문제를 완전히 
        소멸시키지 못했지만, 평등과 복지면에서 자본주의에 비해 훨씬 나았다는 점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최근 일어나는 동구권의 자본주의화 추세는 여성의 지위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데, 이러한 후퇴는 여성에 특유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바뀌면서 모든 노동자층에게 생기는 변화라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노동자의 지위하락과 같은 정도로 여성지위하락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더욱 하락의 정도가 심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 등 최근 
        사회주의권의 변화를 보는 시각에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사회체제의 문제 이외에 '가족제도의 개혁'이 없으면 여성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논의되었다. 가족을 기본단위로 해서 사회가 이루어지는 한 
        가부장제는 존속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여성이라도 가정을 갖고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한다는 철칙은 깨어져야 한다는 데에 합의하면서, 다른 한편 여성이 
        다양한 가족형태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되었다. 그밖에 60년대 후반 이후 서구에서 일어난 환경, 
        평화, 반핵, 지역문제 등의 신사회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의 관계를 잠시 얘기했다. 
        참석자들은 환경·반핵·평화문제가 우리에게도 절실한 문제로 다가왔다고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입장에서 환경·반핵·평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했다. 80년대 서구여성운동(에코페미니즘)이 이에 참여한 것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여성이 참여하는 근거를 서구의 급진적 여성해방론자처럼 
        성취지향적 남성성·생명중시적 여성성의 대립구도에서 찾는 데에는 반대하였다. 
        참석자들은 생태계파괴나 반평화상태가 일차적으로 여성을 피해자로 한다는 
        점에서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발견했다. 군국주의는 국가예산을 여성복지가 아닌 
        무기구입에 투여하고, 군기관에 여성고용을 배척함으로써 여성실업을 
        증가시키며, 군사문화의 만연으로 성폭력 등의 사회폭력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80년대 후반이래 견해차이를 보였던 연구자들이 이 좌담회를 통해 자신과 
        상대방 사이에 다른 부분이 무엇인가 확인해보고 그 다른 점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활로를 모색해 보았다. 이 좌담회에서는 계급의 관점에서 여성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접근방향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 스스로도 이론적 
        허점이 많았다는 점을 시인하고,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에 대해서는 여성문제가 
        계급문제와 무관하지는 않다고 하면서도 가부장제와 계급갈등 사이의 결합관계를 
        설명하는데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좌담회는 여성운동의 본질에 집착하는 
        이론논쟁은 여성내부의 분열을 조장할 뿐이라고 보고, 그보다는 여성운동의 
        저변을 확대하고 쟁점에 따라 연합하여 연대운동을 벌이는 것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울러 여성문제가 정치문제(민주화, 
        외세로부터의 독립, 통일, 재벌에 대한 규제 등)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데 그와 
        관련없이 여성문제로만 연대할 수 있는 사안이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이 좌담회는 서로의 입장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매도하거나 일축하지 않고 양이론의 공통부분을 확인하고 공동의 실천과제를 
        모색해보았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자리였다. 

        ■여성학방법론의 전개 
        한국여성학의 중견연구자 세 사람이 여성학회에서 각각 자신의 연구방법론을 
        발표하였다. 조형교수는 "사회과학으로서의 여성학 방법론"('91년 5월 
        월례발표회)에서 사회과학으로서의 여성학의 위상과 연구방법론에 관해 서양의 
        이론을 소개하고 우리의 연구방향을 약간 시사했다. 조옥라교수는 
        "남녀불평등구조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91년 6월 월례발표회)에서 기존 
        인류학을 여성적 시각에서 비판하고 남성중심적 자료발굴에서 탈피하여 
        여성자료를 재해석할 것을 주장했다. 장필화교수는 "여성과 몸에 관한 여성학적 
        접근"('91년 9월 월례발표회)에서 여성신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고정관념(신화)에 도전하면서 여성의 몸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그동안 
        여성학 방법론에 관해 외국이론의 직수입이나 번역이 아닌 자신의 견해를 
        논문으로 발표한 일이 적었는데, 나름의 여성학체계와 논리를 시도한 점에서 
        의의있는 일이라고 평가된다. 여성학의 방법론논의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학문적 성숙을 위한 건전한 방법으로 지속되기를 바란다. 

        조형은 여성학이 독자적 학문분야이며, 사회과학이고, 기존의 개별 사회과학의 
        경계를 넘어서 여성문제에 관한 통합적 시각으로 연구하는 '초분과적 
        통합사회과학'이라고 한다. 20세기의 사회과학 방법론 중 여성학에 가장 가까운 
        방법론은 비판적 사회과학방법론으로서 이는 사회질서를 재구성하려는 실천적 
        과제를 갖는다고 한다. 여성학은 여성해방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학문이므로 
        연구과제와 개념의 설정에 규범적 가치가 개입된다고 한다. 여성학의 사회과학적 
        인식론에 관하여는 하딩(Harding)의 이론에 따라 페미니스트 경험주의, 
        페미니스트 입장론, 페미니스트 포스트모더니즘을 소개하고, 그들 중 하나만을 
        최선의 방법이라고 고집할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장점을 결합시켜 체계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지는 것으로 그쳤다. 그밖에 이 논문은 여성학 방법론을 
        분리론과 통합론이라는 양분된 패러다임에 따라 설명하였다. 분리론이 여성학의 
        연구영역·개념·방법·이론 등 모든 측면에서 독자적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통합론은 종래의 남성중심적 이론을 여성적 시각으로 보완하여 
        기존의 학문체계에 흡수시킴으로써 포괄적이고 객관적인 이론체계를 세우려고 
        한다. 이 글은 분리론이 독자적인 여성학을 표방하는 장점을 갖는다고 인정하는 
        반면, 여성을 이론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종래 남성중심적 이론과 같은 편파성의 
        오류를 범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여성의 감정과 체험에 기초한 이론은 
        심리학적 환원론에 빠져 개인의 심리를 전체사회구조와 연결시키는 비약을 
        저지를 위험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통합론에 대해서도 기존 학문분야에 여성적 
        시각을 환영하여 수용할 전문가집단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 여성연구자가 
        남성중심적 학문세계에서 소외되어 주변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조형은 
        여성학이 기존사회과학을 보완하는 도구에 그치지 말고 여성억압을 총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결론을 짓는데 이것만으로는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 추측하기 
        어려워 유감이다. 

        여성해방의 분야별 연구 
        ■노동분야 
        노동분야는 단행본 및 논문이 가장 많이 발표된 분야이다. 여성노동문제는 
        노동운동, 여성운동, 경제정책의 접점이므로 각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수행했다. 필자는 대부분이 여성학연구자였으며, 노동경제학자등 노동전문가가 
        정책연구과제로서 여성노동을 분석한 글도 있다. 작년에 이어 
        동일노동·동일임금의 관철을 위한 연구가 좀더 심도있게 전개되었으며, 
        모성보호와 직업병에 관한 논문도 작년의 연구성과지만 올해에 출간되었다. 올해 
        갑자기 확산된 시간제노동의 문제는 중요한 현실과제로 던져져 그에 관해 몇 
        편의 논문이 나왔다. 모든 연구자들이 연구단체로, 운동현장으로 동분서주하면서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해이었다. 

        노동분야의 단행본이 각 연구단체별로 발간되어 양적 팽창현상을 보였다. 
        한국여성연구회가 [여성노동자와 동일임금;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이론], 
        한국여성민우회와 여성한국사회연구회 공동으로 [사무직여성과 임금-사무전문직 
        임금실태분석 및 차별임금개선을 위하여],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여성노동과 
        평등],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신영수의 [여성노동시장의 중장기전망과 과제]가 
        출판되었다. 석사학위논문으로 김경희의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정착화에 관한 
        연구-제조업 생산직을 중심으로](이대 여성학과), 박정원의 [기혼여성의 
        파트타임노동에 관한 연구;은행파트타이머를 중심으로](이대 사회학과), 
        송다영의 [임시용역노동과 노동통제](이대 여성학과)가 쓰여졌다. 

        여성노동의 기초이론에 관해서는 함인희의 "세계자본주의구조와 여성의 
        경제적지위;성별직업분리현상에 관한 71개국 비교연구"가 [여성연구]에(30호, 
        봄), 장하진등의 "대외의존적 공업화와 여성노동의 성격-80년대를 중심으로"가 
        학술단체협의회 제4회 연합심포지움에서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한국사회'라는 큰 
        주제아래 발표되었다. 이 두 글은 여성해방이 자본주의구조와 어떤 관련을 
        갖느냐에 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한국여성연구회가 발간하는 [여성과 사회]2호는 여성노동과 모성보호에 관한 
        특집을 마련하여 강이수의 "여성해방과 모성보호", 신경아/차인순의 
        "일본·스웨덴·소련의 모성보호정책과 현실", 정혜선/이건정/박기남의 
        "생산직여성노동자의 건강과 모성보호", 김희정/송다영의 "사무직여성노동자와 
        VDT증후군"을 게재하였다. 여성주간 여성고용토론회에서는 이건정의 "감원, 
        대량해고와 고용보험제", 송다영의 "증가하는 임시고용, 대책은 무엇인가", 
        김경희의 "의류산업 여성노동자의 고용불안정"이 발표되었다. 여성개발원의 
        [여성연구]에는 김태홍의 "남녀근로자 임금구조에 관한연구"와 "제조업 
        성별고용비율 변화분석", 윤석천의 "여성노동력의 유휴실태와 활용과제", 
        김재원의 "여성차별철폐를 위한 장단기적 전략에 관한 연구", 정진화의 "여성의 
        경제활동구조와 취업구조", 김엘림의 "여성노동자의 보호와 평등에 관한 법적 
        고찰"이 게재되었다. 그밖에 정보화사회와 여성발전이라는 연구과제 아래 
        장필화의 "공장자동화와 생산직 여성노동의 변화:의류봉제산업을 중심으로", 
        이영자의 "정보화사회와 사무직노동"이 과제물로서 출간되었다. 

        올해 미비한 점을 지적하자면 노동현장에서 그때그때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응하다보니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그에 따르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올해 노동현장의 문제로서 산업구조조정에 따른 회사정리와 그로 인한 
        대량해고가 심각한 문제를 던졌는데 그에 관해서는 걱정만 많이 했지 체계적인 
        접근과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채 한 해를 넘기고 말았다. 산업구조변화 및 
        노동시장변화에 따라 새로 제기되는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이론들이 갖추어져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으며, 사용자나 정부의 술책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세우는 데에도 역부족이었다. 시간제노동과 
        임시직에 대해서도 뚜렷한 대응방안이 마련되지 못한채 오히려 정부의 
        반여성노동자적 정책에 밀리고 있는 형편이다. 임금에 대해서도 계속적으로 
        연구하여 동일임금이 실현되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공장자동화에 대비하여 그에 따른 여성노동의 변화에 관해 좀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 올해의 연구목록을 볼때 여러 주제를 다양하게 접근하지 않고 그 해의 
        노동상황에 따라 몇 가지 주제에 집중하여 마치 연구가 유행을 타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내년에는 장기적인 과제를 설정하고 이론과 정책분야로 나누어 심도있게 
        논의해야 하며, 아울러 최신자료와 연구자의 확보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가족분야 
        여성한국사회연구회에서 종전의 [한국가족론]에 이어 가족과 여성을 주제로 한 
        두 번째 단행본으로써 [여성가족사회]를 내놓았다. 이 책은 가족에 관한 
        전문잡지의 창간호로 기획되었다. 제도사적 연구 위에 생활사를 통한 개인적 
        접근이 보완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특집으로 다룬 한국가족사 연구에 
        관해서는 조옥라의 "한국고대가족에 대한 인류학적 상상", 신연숙의 
        "한국가부장제의 사적 고찰", 조은의 "일제하 향촌 반가의 가족생활의 변화", 
        박영선의 "월남한 가족의 경제생활사"가 게재되었다. 가족사 사례연구로써 
        조성숙의 "한 양반가족의 해체와 변형", 이광자의 "이씨 가족사를 통해 본 
        전통문화의 지속과 변동", 강득희의 "임씨 가족3대의 삶"이 체험적 서술로 
        전개된다. 

        이 연구회는 계층화로 분화하는 우리의 가족관계와 생활문제를 생산 및 
        재생산의 측면에서 연구해왔다. 이 전문지의 발간은 연구회가 가족분야에서 더욱 
        전문화함으로써 여성해방론을 가족문제로 특화해 나가려는 의도라고 추측된다. 
        이러한 의도는 여성억압에 있어서 가부장제 가족제도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인식을 기초로 한듯하다. 

        한국가족학연구회 편으로 [가족학연구의 이론적 접근-미시이론을 
        중심으로](교문사)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Wesley, Burr등 네 학자가 정리한 
        '가족연구에 있어서의 현대이론'을 기초로 각 연구자의 관점을 정리한 
        논문집이다. 사회교환이론적 접근, 상징적 상호론적 접근, 일반체계론적 접근, 
        갈등이론적 접근, 현상학적 접근, 발달적 접근, 가족생태학적 접근을 
        가족학연구와 관련하여 서술하였다. 그밖에 단행본으로써 배리 쏘온, 매릴린 
        얄롬 엮음, 권오주외 옮김의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본 가족](한울아카데미 
        여성학강좌3)이 나와 여성학 교재로써 환영받고 있다. 이 책은 가족연구가 
        기능주의 일변도에 빠져 보수적이고 경직적으로 흐르고 있음을 비판하고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가족을 해부했다. 이 책은 다음의 다섯 가지 주제를 다룬 
        논문들을 수록하였다. 첫째, 부양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로 구성되는 핵가족을 
        당연시하는 '전형적 가족'의 이데올로기에 반대한다. 둘째, 성별노동분업, 
        성관계, 남성지배, 모성과 관련하여 가족을 사회적, 역사적으로 재분석한다. 
        셋째, 가족은 성과연령에 따라 다르게 경험된다. 넷째, 가족이 사적 영역으로서 
        사회와 차단되어 있다는 이분법에 도전한다. 다섯째, 시장경제에 기초한 
        개인주의와 가족에 기초한 애정있는 보살핌 사이의 분리현상을 분석한다. 그밖에 
        사사베 다케토시, 카츠라 료다로 지음/김성천 옮김의 
        [현대가족복지론](서윤출판사)은 가족복지연구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개요를 
        제공하고 있다. 

        박사학위논문으로 문소정의 [일제하 한국농민가족에 관한 연구;1920∼30년대 
        빈농층을 중심으로](서울대 사회학과)가 가족에 관해 사회구조적 시각과 
        여성해방적 시각을 접합시켰으며 역사적 서술에서 사회사, 생활사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김선희의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평가에 관한 연구](부산대 
        가정학과)도 발표되었다. 석사학위논문으로는 이은희의 [현대중국의 
        가족계획정책의도 및 그 결과분석- 한자녀 낳기정책을 중심으로](이대 
        여성학과), 임순영의 [기혼여성의 인공유산경험에 대한 사례연구]가 있다. 

        여성개발원의 [여성연구]에 게재된 논문으로는 박민자의 "자영소상인 가족의 
        생계유지방식과 여성"(32호, 가을), 여성한국사회연구회 제2회 심포지움에서는 
        부모자녀관계라는 주제아래 김미숙/김자혜의 "아버지의 역할수행과 자녀의 
        학업성취 및 의식", 김은경의 "가족해체가 청소년기자녀의 사회화에 미치는 
        영향", 박금혜의 "어머니와 청소년자녀의 사회상과 사회의식", 유희정의 "아동의 
        학업성취와 부모자녀관계"가 발표되었다. 

        ■문학분야 
        한국여성연구회에서는 이전에 발표된 작품들을 여성해방적 시각에서 읽는 
        비평작업을 하였다. 80년대 우리 문학의 주요성과중 하나로 꼽히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대한 비평이 [여성과 사회]2호에 실렸다(김영혜, 김양선, 오세은, 
        태백산맥론). 이 글에서는 조정래가 대부분의 여성등장인물을 성적 대상화시켜 
        여성에 대한 작가의 이분법적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나 관념론적 이분법적 사고는 남성인물들의 현실성까지 저해하고 있고 
        민중에 대한 대상화를 초래하며, 민족과 계급 및 전쟁의 내인과 외인 등의 
        양분화에 이어진다고 한다. 결국 이 글에서 제시하는 여성해방문학론의 핵심은 
        "작가가 갖는 여성관의 한계는 여성인물의 형상화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관의 
        한계로 이어져 작품전체의 성취도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원영선의 "올바른 
        여성해방문학을 위하여"([오늘의 문예비평], 가을), 김영혜의 "한국여성 
        해방문학의 연구현황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서도 이러한 문학비평론이 
        전개되었다. 그밖에 빈센트 B, 레이치/김경수역의 [페미니스트 
        비평](번역서)에서는 영미와 프랑스의 페미니즘의 전개과정을 면밀히 
        고찰하였다. 

        올해에는 특히 박완서에 관한 문학비평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술한 
        조혜정의 박완서론에서는 그간 박완서에 대한 평론이 모두 박완서의 작품에 대한 
        부당한 '죽임'의 비평이 있다고 지적하고, 그들 평론을 세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첫째 유형은 '남근중심적 비평'으로서 이 부류의 비평가들은 "성차별의식이 
        투철해서 여성작가의 작품을 심각하게 읽을 의도조차 없었다"고 질책한다. 둘째 
        유형은 '남성중심적 비평'으로서 이 부류의 비평가들은 "의도적으로 여성작가를 
        매도하지는 않지만 사회가 성범주에 따라 근본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음을 
        인식하지 않으려 했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셋째 유형으로서 '여성의 체험을 
        애써 외면하는 여성해방 문학비평'을 들고 이 부류의 비평가들은 "남성들이 
        하다가 싫증난 추상적 주지주의에 빠져 민중문학계와 여성문학계의 양편에 대고 
        파괴의 펜대를 휘두른다"고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조혜정은 문학비평은 소설가의 
        작품을 살려내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박완서가 "봉건적 가부장제의 질곡 
        뿐만이 아니라 산업자본주의적 사회에서, 핵가족화 과정에서 남녀관계가 어떻게 
        변질되어 나타나는지를 정확하게 포착해내어 주고 있다"고 격찬한다(142면). 
        이에 대해서 전승희는 조혜정이 문학비평의 기능이 '살림'이라고 하면서 작품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고 있고 박완서에 대한 비판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듯한 
        자세를 보인다고 한다. 조혜정이 남성비평가들 사이의 세계관의 차이를 무시한 
        채 일괄적으로 평가를 내리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서 문학과 
        사회과학의 관계, 문학에서의 리얼리즘문제들에 대해 일면적 지식을 갖고 있는 
        평자의 한계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비평을 죽임의 비평으로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전승희는 자신을 비롯한 한국여성연구회의 박완서론이 "작품의 민족 
        민중문학으로서의 성과가 여성문학적 성과와 일정한 비례관계에 있다."는 점을 
        제시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고 밝힌다. 김양선·오세은의 [안주와 탈출의 
        이중심리]는 박완서의 70년대 단편을 검토하고, 기층여성들의 시각을 통해 
        중산층여성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중산층여성문제가 우리 사회의 
        제반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고 분석한다. 그밖에 박완서에 관하여 
        박혜란의 "여자다움의 껍질벗기-박완서작품에 나타난 여성문제인식"([작가정신], 
        봄)에서는 여주인공들의 의식화에 이르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리지 못한 것을 
        박완서의 한계로 지적한다. 

        김영미·김은하의 "중산층여성의 정체성 탐구"는 오정희와 김채원의 삶속에서 
        자기존재를 실감하지 못하는 중산층여성의 정체성의 위기의식을 다루면서 그들의 
        내적 곤경을 현실적으로 형상화하지 못하고 보편적인 인간조건의 문제로 
        처리했다고 비판한다. 위에 언급한 김양선·오세은의 "안주와 탈출의 
        이중심리"에서 김향숙에 대해서 80년대 중산층여성을 다루면서 여성문제를 
        가족내의 갈등으로 국한시키고 사회문제와 연관시키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김영혜·오은영의 "노동문학에 그려진 여성과 사랑"은 최근 발표된 차주옥, 
        정화진, 안재성의 [함께가자 우리], [활화산], [사랑의 조건]등 
        노동장편소설에서 작가들은 현실주의적 기본시각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사랑과 결혼에 관한 테마에만은 감상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비난하고 사랑을 
        포함한 여성의 삶에 대해 현실주의적 안목을 견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명호·이숙경의 "포스트모던시대의 성"은 새로운 감수성을 보여주는 김수경의 
        [자유종]과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에서 다루는 성의 문제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여러 징후를 보인다는 문제의식하에 여성해방론의 관점에서 
        이들 작품의 성을 분석하였다. 

        여성문학의 사적 고찰도 소설과 시에서 시도되었다. 정영자의 "한국페미니즘 
        소설의 계보"에서는 그 시초를 조선시대의 [춘향전]과 [박씨전]에서 찾는다. 
        개화기의 [혈의 누], [자유종], [추월색]을 거쳐 1920년대의 김명순, 김일엽, 
        나혜석, 1930년대의 박화성, 강경애, 백신애, 50∼60년대의 강신재, 한무숙, 
        한말숙, 박경리, 손소희 70년대 박경리, 박완서, 80년대의 이경자, 박완서, 
        윤정모, 오정희, 김향숙 등을 통해 페미니즘소설의 계보를 작성하고 있다. 
        김정란의 "서있는 성모들- 죽음과 육체를 견디는 여인들, 여성시인들, 
        수인들?"([문학정신], 9월)은 최초의 여성시인인 백수광부의 아내로부터 
        7,80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시인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특히 7,80년대의 
        여성시인들은 죽음에의 친화력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그들의 운명에서 담당하는 
        재생산의 몫과 그 귀결인 살의 썩음까지 내면으로 감싸려는 모성적 인식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밖에 문학작품에 나타난 여성체험 및 그 서술에 대한 분석이 [한국여성학] 
        제7집에 '여성체험의 기술-한국여성학의 보편성과 특수성Ⅶ'이라는 표제아래 
        발표되었다. 서정자의 "페미니스트 성장소설과 자기발견의 체험"은 강경애론으로 
        그의 작품이 페미니스트 성장소설로서 가진 특성을 분석하였다. 조무석의 
        "여성작가 메리셸리와 [프랑켄쉬타인]의 재해석"에서는 기술 '산업문명의 
        반인간성·반여성성에 대한 비판을 하고 양성적 미래상을 모색했다. 서지문의 
        "자전체 서술기법으로서의 자기은닉"은 브론테의 작품주인공이 소극적 
        현실순응적이기는 하지만 당시상황에서 억압을 직시하고 삶을 살아냈다고 
        보았다. 박명진의 "대중문화적 여성체험기술에 대한 재평가:여성쟝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멜로드라마 등 대중적 여성쟝르가 저항적 즐거움을 통해 
        가부장적 이념에 저항하는 문화적 경험을 가능케 한다고 평한다. 이 글들은 
        종래의 견해를 가부장적 고정관념이라 보고 여성적 체험기술로써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하려고 시도하는 점에서 공통된다. 

        ■기타 
        사회주의국가에 대한 연구로서는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기획하고 
        손봉숙·이경숙·이온죽·김애실 공저의 [북한의 여성생활](나남)과 윤미량의 
        [북한의 여성정책](한울)의 두 권이 단행본으로 나왔다. 논문으로는 차인순이 
        "소련의 모성보호"([여성과 사회]2호 수록)과 "사회주의와 
        여성해방"([여성학강의] 수록)을 발표하였고, 21세기위원회에서 김애실의 "소련 
        및 북한 여성의 노동실태"를 발표하였다. 

        성에 관한 연구도 예년에 비해 활발했는데 또 하나의 문화 8집 [새로 쓰는 성 
        이야기]에 이상화의 "환상과 신화로부터의 해방", 장필화의 "성, 사랑, 결혼에서 
        주인되기", 추애주의 "여성의 자신의 몸에 관한 권리를 소유하는 것이 
        가능한가"등이 남녀 비대칭적인 성문화를 비판하고 주체적 성관념을 주장했다. 

        주로 개별여성의 체험적 고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성의 사회적 측면이 
        가볍게 다루어져서 구체적인 대안으로 역할을 할 지 의심이 간다. 그밖에 
        이영자의 "자본주의와 성"([여성연구], 여름), "성과 사랑"([여성학강의] 
        수록)은 서구자본주의국가에서 성의 사회문화적 구조를 이론적으로 소개하였다. 

        내년도 연구과제 
        사회주의권의 변화는 진보적 여성해방론에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여성해방론이 담고 있는 계급 "민족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여 교조적인 
        부분은 반성하고 성숙한 이론적인 틀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이론틀과 
        다른 입장의 여성이론에 대해서도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지 말고 개방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원론적인 기본틀에만 집착하지 말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이론의 범주확장에 주력하여 각 세부 연구분야에 
        유용한 기본이론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사회를 분석하는 
        능력을 더욱 연마해야 한다. 

        앞으로 여성연구는 각론분야에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문학, 노동, 가족 
        이외에 여성해방과 관련된 다른 인문사회과학분야로 넓혀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심리, 교육, 역사, 정치, 경제, 법률, 언론 등 우리가 좀더 깊이 
        연구해야 할 분야가 많이 있다. 이들 분야의 연구에 있어서는 각 분야에 관한 
        지식습득, 현실파악, 대안제시가 삼위일체를 이루어 객관성과 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 전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좋은 자료(특히 해외의 최신자료)를 
        입수해서 연구·분석할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각분야의 전문연구자를 
        여성분야로 끌어 들여 여성연구자를 양적, 질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여성운동은 대중성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운동가 자신의 이론틀에 집착한 
        사업보다는 대중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펼쳐나가야 한다. 대중적 참여가 
        따르기 어려운 운동의 선도성은 수위를 조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진보적 
        여성운동은 생산직노동자의 노동현장의 문제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모든 계층의 
        여성들이 당면하는 다양한 문제에 접근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있었다. 여성운동은 
        대중적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 노동문제 이외에 환경,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전업주부의 요구도 수용해야 한다. 통일문제와 군축 및 평화문제는 
        여성운동이 민족적인 차원에서 꾸준히 펼쳐나가야 할 사업이다. 아울러 북한과의 
        계속적인 교류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운동의 새방향을 내실있게 
        다져주는 일은 여성연구자가 해야 할 과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