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여성(Les Mots et les Femmes)
        저자 홍연숙
        발간호 제045호 통권제목 1994년 겨울호
        구분 ARTICLE 등록일 2010-01-27
        첨부파일 언어와 여성(Les Mots et les Femmes).pdf ( 2.58 MB ) [미리보기]

        <목차> 
        Ⅰ. 서론 : 깨어 있는 여성이면 꼭 읽어야 할 책 
        Ⅱ. 충실한 내용과 고전적 가치 
        Ⅲ. 원서(1978)가 너무 낡아 최근 여성언어 반영 못해 
        Ⅳ. 번역된 용어(terminology)의 특징 
        Ⅴ. 남성언어와 여성언어(Language women speak) 
        Ⅵ. 언어에 나타난 여성의 이미지(Language about Women) 


        Ⅰ. 서론 : 깨어 있는 여성이면 꼭 읽어야 할 책 

        이 책을 사전 지식이 없이 무심코 집어들고 읽기 시작한 여성은 아마도 멍하니 
        있다가 방망이로 한대 얻어맞은 기분일 것이다. 한마디로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언어의 위력이 그렇게 큰 것인가. 말 한마디로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고('사랑해요'), 말 한마디에 목숨을 걸고 적진에 돌격하며('조국을 
        위하여'), '자유'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불란서 대혁명도 일어났고, '아빠'라는 
        첫 아이의 말 한마디가 선 머슴아를 의젓한 아버지의 위상으로 올려놓는다. 

        반대로 언어의 폭력도 무섭다. '계집애가 왜 그리 목소리가 커?'하고 
        반복하면, 자라면서 기가 죽고 결국 말을 입속에서 더듬는 바보가 될 수 있다. 
        부모의 '나가 죽어라', '넌 안돼' 등 욕설에 익숙한 자식이 후에 폭력배가 되고, 
        살인범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언어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변별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이다. 그가 사용하는 
        말에 따라 한 인간의 권위와 사회적 지위를 가늠할 수 있다. 인간의 언어가 
        인간의 생각을 반영하고 때로는 언어가 사고를 유발하여 행동으로 어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면 누구나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고, 여성이면, 특히 깨어있는 여성이면, 언어가 남성중심의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역사적으로, 전통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억압해 왔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언어가 문화의 거울로서 기호의 형태를 인간두뇌속에 개념으로 고정시킴으로써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보급시킨다. 동서양을 통틀어 
        가부장제도 속에서 여성은 차별의 대상이 되어 왔다. 대부분 여성들은 이런 
        피해를 입어 왔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자기를 비하하는 어휘들을 일상 써 
        오면서 그것이 오히려 미덕인 줄 알고 살고 있다. 

        여기 소개하는 [언어와 여성]은 바로 그 문제를 단번에 깨닫게 해 주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희미했던 우리의 언어의식을 환히 밝혀 줄 한권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전형적인 여성언어인지, 어떤 표현들이 여성을 경멸하는 
        언어인지, 특히 언어가 어떤 이미지의 여성을 부가시켜 왔는지, 또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어느 정도 반영해 왔는지 등을 잘 일깨워 줄 것이다. 이 역서가 
        [페미니즘 총서(5)]로 발행된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Ⅱ. 충실한 내용과 고전적 가치 

        (본 저서는 번역서이므로 먼저 원작에 대한 평가를 하고 다음에 번역에 대한 
        언급을 하겠다.) 

        먼저 '차례'를 보면 충실한 내용과 고전적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제1부에서는 여성언어의 역사적, 인류학적, 민속학적, 여성운동적 
        시각에서 유래와 배경을 체계적으로 소개함으로써 여성이 말하는 여성언어가 
        어떤 것인지를 소개한다. 제2부에서는 '여성에 대한 언어'가 어떤 것인지를 
        생물학적 성(性, sex)과 사회적 성(gender)을 구별하여 설명한다. 성에 따라 
        단어의 형태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며, 성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다르게 
        해석이 되는지, 즉 그 불균형이 어떻게 여성에게 작용하는지, 또 남성은 
        마음놓고 큰소리로 권력자의 언어(명령조, 욕설 등)를 사용하고, 여성은 
        사회에서 제 이름조차 잃고 남편의 이름과 지위로서 인정받게 되는 등, 위축된 
        개미 목소리의 존재로 전락됨을 보여준다. 

        역사적 배경뿐 아니라 독자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영어자료 이외에 불어의 
        실례가 많아 더욱 내용의 풍요를 느낀다. 

        여기에서 몇개의 용어를 밝히고 서평을 계속하겠다. 우선 '언어와 여성'을 
        연결해서 연구하는 학문을 사회언어학(Socioliguistics)이라고 하고, 
        사회언어학은 또 여러 부문으로 나뉘는데 그중 중요한 부분이 
        여성언어(genderlect)다(이 용어는 본 역서에 등장하지 않은 단어이다). 

        여성언어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여성들이 말하는 
        언어(language women use)' 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에 대한 언어(language about 
        women)'이다. 

        본 역서가 고전적 가치가 있다함은 이 한 권을 읽으면 여성언어에 대한 
        기초지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한 권을 토대로 다른 관련 저서를 읽어 
        지식의 영역을 얼마든지 넓힐 수 있다. 



        Ⅲ. 원서(1978)가 너무 낡아 최근 여성언어 반영 못해 


        사회언어학은 역서의 서문에도 언급되었듯이 1970년대 이래 미국 펜실바니아 
        대학의 라보브(William Labov)교수의 변이이론이 널리 연구되면서 여성언어도 
        학문적으로 각광을 받게 된다. 같은 표현이라도 여성은 점잖고 완곡적인 어휘를 
        사용하고, 남성은 거칠고 직설적인 단어를 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방은 대단히 덥군요. 문 좀 열어 주시지요"라는 내용이면, 남자는 "제길! 이 방 
        왜 이리 더워. 문 좀 여시오!" 명령조일 것이고, 여자는 "어머나, 이 방이 왜 
        이렇게 더울까요? 문 조금만 열어 주시겠습니까?" 하고 공손히 말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같은 내용이지만 화자에 따라 변이적 표현을 쓴다는 이론이다. 

        여성언어는 특히 1975년 UN이 선포한 '세계여성의 해'를 기점으로 
        여성언어학자들의 왕성한 출판활동으로 여성해방운동가들의 관심 속에 전성기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1980년대는 여성언어의 연구가 더욱 활발해졌고 여성언어의 
        개념까지 수정되기에 이르렀다. 즉, 여성언어의 특징은 전통적으로 '약하고, 
        작고, 악하고, 추하고, 미숙하고, 은밀하고, 불법적이고, 신비적이고, 
        방황적'이라고 단정지었는데, 1980년 오바아-엣킨즈(O'Barr & Atkins)의 논문에 
        의하면, 위의 여성언어의 특징은 '힘없는 남성'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반년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 판사, 교수, 여의사 등의 언어가 출세한 
        남성들이 언어와 같다는 것이다. 즉, 후자의 언어는 '강하고, 크고, 선하고, 
        아름답고, 성숙하고, 공개적이고, 합법적이고, 분명하고, 의연하다'고 특정 
        지어진다. 이 특징의 나열은 본 역서에서 인용한 것이다. (p. 113, 121). 

        다시 말하면, 1970년대에 언어를 남성 : 여성이라는 이분법(二分法)으로 
        분석하던 것을 1980년대에는 언어를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powerful vs. 
        powerless)로 구분하고 있다. 오바아-앳킨즈는 '힘없는 남자'로서 법정에 선 
        죄인과 증인들을, '힘있는 여성'으로서는 여판사와 여사장을 대상으로 그들의 
        언어를 분석했다. 

        지금은 1990년대 중반. 더 많은 여성언어에 관한 저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왜 1979년에 나온 오래된 책을 1994년에 역자가 선택하였는가. 나는 자문 의아해 
        하면서 본 역서를 읽기 시작하였었다. 왜 좀 더 최신 것을 택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책의 내용이 충실하고 고전적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느끼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일게 되었다. 영어로 된 서적은 많이 읽었는데, 따라서 영어의 
        사례는 많이 접했으나 불어의 사례는 익숙치 않아서 더 유익하였다. 



        Ⅳ. 번역된 용어(terminology)의 특징 

        현대 언어학에서의 최신 용어들은 대체로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다. 본 역서에서 사용한 용어들은 불어를 우리말로 번역했기 때문인지 
        조금씩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문화적 성(性)'을 영어로 gender('생물학적 성'은 sex)라고 하는데, 
        불어에서는 genre라고 하여 영어에서 보편적으로 쓰는 (문학) 장르와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문법적 정으로서 남성, 여성도 영어권에서는 M(masculine), 
        F(feminine)으로 나타내는데 본서에서는 H(homme), F(femme)의 기호를 쓰는 것이 
        생소하다(p. 33). 그외에서 '소사'(접미어를 뜻함, p. 28), '변이체'(변이형, p. 
        25), (형태, 구문론적) '층위'(相, 측면, p. 23, 27. 30), (무생물의) 
        '지소사'(指小辭, 축소형 접미어, p. 135), '작위적 행위'(인위적, 의도적, 
        처방적, p. 226 이하) 등이 낯설었다. 이런 용어도 국어학에서 보편적으로 쓰는 
        용어로 번역했었으면 전문지식이 없는 독자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인명도 우리말 표기가 어색한 것이 많다. 예컨데 미국인 라보브(Labov)도 
        '레이보브'라고 하였는데 원어를 괄호속에 주지 않아서 누구를 지지하는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영국인 트러드길(Peter Trudgil)도 '트루질'이라 하여 
        알아보기 힘들었다. 인명의 발음은 제멋대로이므로 역자의 골치꺼리이고 
        틀리기가 쉽다. 

        다음은 본 역서의 내용을 차례에 따라 제1부(여성이 말하는 언어)와 
        제2부(여성에 관한 언어)로 나누어 간단히 논평해 본다. 



        Ⅴ. 남성언어와 여성언어(Language women speak) 

        전술한 바와 같이 제1부에서는 여성이 말하는 여성어를 다루고 있다. 본서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언어의 전모(全模)보다는 단어 중심의 분석이라는 인상이 
        짙다. 원서의 제목(Les Mots et les Femmes, 즉 'Words and Women')도 '언어와 
        여성'이라기 보다는 '어휘와 여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어휘들의 개념에 있어서도 현대여성이 쓰는 말이라기 보다는 20년전 여성들이 
        사용해 온 어휘와 개념, 그리고 언어태도가 소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1970년대의 여성언어는 여성운동의 과도기였던 그 시대를 반영하여 지금보다 
        미숙하고 도전적, 전투적인 용어와 사고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문에서 '언어란 억압의 수단'(p. 5)일 수 있고, 인간 공통언어이자 지배적인 
        언어는 남성언어이며, 피해자는 바로 여성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여성언어는 
        약자의 언어로 경멸의 대상이 되어 왔다는 것이 본서의 요지이다. 

        역자는 본서의 제1∼2장은 안 읽어도 된다고 하였으나 인류학과 민속학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여성언어의 역사적 사례는 이 책의 알맹이로서 뒤에 나오는 
        다양한 사회언어학적 분석이나 문화적 해설보다도 중요하다고 보아 반드시 
        읽어야 하는 부문이다. 혹시 처음 두 장을 빼고 뒷부분을 먼저 읽더라도 반드시 
        다시 처음 부분을 읽어 줄 것을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여성들이 말을 다르게 하는 것도 가부장제의 공모지만 여성이 도대체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 더 심한 억압이었다. 즉, 금기어와 족외결혼이 그 방법이었다. 
        전자의 예로서는 남편의 식구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금기로 된 사회(p. 17)가 
        있고, 후자의 예로서는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언어가 달라서 남편과 아내가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하고, 아이들은 어렸을 때는 어머니의 말을 하다가 12세 
        이상의 아이는 아버지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하였다(P. 18, 21). 

        음성적인 측면에서도 여성이 발음해서는 안되는 음운(speech sounds)이 있다. 
        몬타나주의 그로방트르(Gros Ventre)족의 언어에서는 모든 /k/음을 남자는 
        구개음화해야 한다. 위반할 경우엔 동성연애자로 사회적 처별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p. 21). 소속된 계층의 표시로서의 발음이 갖는 의의도 심각하여 버나드 
        쇼(G. Bernard Shaw)의 유명한 [피크말리온(Pygmalion)]의 주인공이 천한 
        지위에서 숙녀의 위상으로 승격하게 되는 것도 그녀의 점잖은 언어의 
        습득때문이었다. 

        은어와 속어는 근복적으로 남성의 창조물이다. 금기의 해소가 억압된 욕구를 
        해방시켜 준다. 여성들 앞에서 금기인 음담패설을 남성들은 은어와 속어를 
        사용함으로써 표현하여 그들의 욕구를 해소한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희롱은 강간의 형태를 띠고, 언어를 사용한 강간은 곧 육체적 공격을 
        위한 전주곡이라고 하였다. 저자는 D.H. 로렌스의 [채털리부인의 사랑]이 이를 
        증명한다고 한다. 은어나 농담(joke), 음담패설을 여성은 알아듣지 못한다고 
        남성들은 생각하고 우쭐하곤 한다. 설사 여성이 알아들었더라도 못알아들은 
        척해야 숙녀대접을 받는다. 전혀 못 알아들은 척하며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한 
        채, 남성들이 통쾌하게 폭소를 터뜨리는 와중에서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 
        오늘날 40대이상의 여성들의 경우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유명한 코미디언이 
        남성들이었던 사실도 우연이 아니다. 

        여성은 결국 가정에서, 사회에서, 남성들에 의해서 숙녀가 되도록 
        길들여진다. 언어적 금기의 준수, 완곡어법의 사용, 세련된 언어 등은 
        예절구조의 근간을 이룬다. 드 보봐르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길들여진다"고 하였을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언어는 인간의 의식구조를 개조할 수 있는 가장 힘있는 무기이다. 

        제3장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여성언어를 다루고 있다. 여성은 아무리 
        좋은 내용을 말하여도 침묵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요지이다. 침묵을 여성의 
        으뜸가는 미덕으로 규정하는 세계 여러나라의 속담들의 나열만 보아도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 "말없는 여성은 신의 축복이다(성경)," "침묵은 여성의 가장 
        아름다운 보석"(영국) 등(p.57)이 있다. 

        또 여성이 사용하는 말의 질(質)이 남성언어보다 낮다는 것이다. 같은 말을 
        하여도 여성의 경우는 "수다를 떠는 것"이고 남성의 경우는 "토론을 벌인다"는 
        것이 남성의 관점이다. 여자아이는 어려서부터 침묵을 배우면서 자라고 
        남자아이는 "멋지게 말하는 기술을 전수받으며" 성장한다. 

        제5장에서는 여성운동가의 언어의 특징을 논한다. 그 특징은 (1) 사회과학에서 
        차용한 어휘의 반복적 사용('역동성, 모순, 참견'), (2) 반체제운동에서 차용한 
        전투적 용어('해방, 투쟁, 억압, 항거, 소외, 집단'), (3) 욕설에는 욕설로 
        대응하는 것 등이다. 

        제1부(제 1∼5장) 끝에(pp.993∼998) 소개된 만화가 시사하는 메시지는 
        애매모호하다. 20년전에 인간의 평등의 시계추가 여성에게서 절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시계추가 평균대에서 여성쪽으로 약간 다가왔는지 
        모른다. 아직 남성쪽으로 치우쳐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 추세에 
        힘입어 여권이 신장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성폭행 대책, 성희롱 방지법 등을 
        착착 정리해가고 있다. 일부 남성들이 역으로 남성해방운동을 논하는 책들도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진취적 여성운동의 새로운 추세가 어떤 실정인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최근 풍경은 본서에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만화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면,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나 삽화가 
        조잡하고 혐오스러운 인물도여서 독자들이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날 것 
        같다. 필자도 마지못해 두세 차례 눈을 비벼가며 겨우 끝까지 읽었다. 번호도 
        매기지 않아 순서도 혼란스러웠고, 내용이 '청소년관람불가'여서 의도적으로 
        힘들게 했나 생각하기도 하였다. 미숙한 여성단체의 전형적인 회의장면을 잘 
        나타냈다고 보았다. 

        내용인즉, 개회하기가 무섭게 말끼어들기, 잡담이 많아 회의 시작한지 30분이 
        지나서야 '강간사건'이라는 문제점을 사회자가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 또 한참 
        걸려서야 '경찰의 무관심으로 고소를 못했다'는 내용이고, '강간'의 정의를 
        제멋대로 내려, 논란끝에 '추근대는 것이 강간의 시초'라고 선언한다. 강간 
        장면을 상세히 듣는 과저에서도 범인이 '팔레스타인'이라고 했다가 
        '이스라엘인'이라고, '치마를 입은 놈'이라고 하였으며, '그럼, 스코틀랜드인'이 
        아니냐는 등 엇갈린 의견과 질문으로 몇시간만에야 겨우 '남창이 여자에게 
        강간당한 케이스'라는 것이 판명된다. 

        이 만화는 과격여성운동가들의 언어습관을 보여준다(예 : '분석해보면, 
        비교할때, 최후에는, 질의하다, 집단노동, 전무' 등, p.91). 성차별의 모습을 
        시사하는 내용은 못된다. 저자가 주석을 달았듯이, '끌레르 브레트세의 만화를 
        통해서 우리(여성)는 자신을 비판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뿐이다. 



        Ⅵ. 언어에 나타난 여성의 이미지(Language about Women) 

        여성언어(genderlect)는 '여성이 말하는 언어(Language Women speak)'와 
        여성에 관한 언어(Language about women)'를 다 포함한다. 여성들이 어떠한 
        어휘들을 쓰고, 어떻게 남성과 다르게 발음을 하고, 어떤 어법과 문제를 
        사용하느냐 하는 언어습관도 중요하지만, 여성에 관하여 남성이나 다른 여성이 
        언급할 때에 어떻게 묘사하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고, 그 관점에 따라 그 사회의 
        여성 이미지가 결정된다. 

        우선 저자는 사회적 성(性, gender)과 생물학적 성(sex)을 구별했다. 저자는 
        불어에 풍부한 문법적 성(gender)에 대하여 M. 뒤랑(1936)을 인용하여 언어의 
        기능주의와 경제성을 논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두 가지를 다 부정한다. 
        경제성이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기능론적 관점에서 아무런 효용이 없다. 
        이미 장르(性)를 제거해버린 영어는 어떠한 불편도 겪지 않는다"(p. 103)라고 
        역설한다. 예컨대 불어에서 '책'(le livre)은 남성이고 '탁자'(la table)는 
        여성이다. 무생물에서 성을 부여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사피어(Sapir)도 
        "무절제한 환상을 용납해서는 안된다"(p. 104)고 했고, 메이어(Meillet)도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p. 106)고 했다. 

        그러나 야콥스(Roman Jakobson)등이 주장하는 유일한 기능은 상징적 기능일 
        뿐이다. 그것은 문법적 성이 한 언어공동체의 신화형성에서는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낮'은 남성이고, '밤'은 여성, '해'는 남성이고 '달'은 여성 등 
        민속신앙으로 발전돼 결국 그 사회에서 개념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에 
        따라 상징성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문제다. '삶'은 불어와 러시아어에서는 
        여성이고, 체코어에서는 남성이다. '죄악'도 독어에서는 여성, 러시아어에서는 
        남성이 된다. 이처럼 다른 상징적 기능은 문학작품을 번역할 경우 혼란과 당황을 
        초래한다. 

        또한 여성언어는 수동성을 내포하고 남성언어는 능동적이라는 일반론이 
        무생물의 문법적 성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모터'(le moteur)는 자체의 힘을 
        갖고 있으므로 남성이고, '청소기(la balayeuse)는 모터 없이는 작동하지 
        못하므로 여성명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심리주의는 경계해야 함은 
        사고의 변화에 따라 문법적 성도 변한다는 사실이다(p. 125). 셈의 언어에서 
        태양, 달, 물, 바람 등의 마술적인 힘에 연결되어 여성이었지만 태양과 달은 
        남성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나쁜 것(惡)은 여성명사인 경우가 많은데, 태풍도 
        여성명칭이 부여되었으나 근래에는 남성과 여성의 이름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여성명사의 수동성과 의존성은 남성명사를 기본형으로 하여 유도된다는데 
        나타난다. 여성대사(ambassadress)는 대사(ambassador)에다 접미사를 붙이고, 
        여성의 실체를 더욱 무시하는 현상은 전자가 대사의 부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여성운동가들은 언어의 평등성이라는 원칙을 따라 
        새로운 명사형을 창조해냈다. chairman 대신 chairwoman이 아니라 중립적인 
        chairperson을 조어해내어 오늘날 상당히 널리 통용되고 있다. 

        원저자는 언어의 불균형이 여성의 이미지와 지위를 손상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한탄하였으나(p. 167), 본인은 반드시 그렇게만 보지 않는다. 
        원저자는 이책을 1970년대에 썼고, 본인은 1990년대의 여성언어 구조를 머리속에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위에서는 언어의 형태, 즉 단어의 모습이 남성과 여성언어에서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았는데, 다음은 같은 단어인 경우 남성과 여성에 각각 적용했을 
        때에 어떻게 그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는가 하는 또 다른 불균형을 분석한다. 
        한마디로 여성인 경우 '경멸'의 뜻이 지배적이라는 결론이다. 예컨대 femme 
        galante는 '바람기 많은 여성'이고, homme galant은 '점잖고 품위있는 
        남성'이다. femme savante(유식한 체하는 여성)는 웃음거리지만 homme 
        savant(학문이 깊은 남성)은 존경받는다(p. 170). 

        제4장에서 남성이 마음껏 욕설을 내뱉을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면 
        여성은 인간본능적으로 남자와 똑같은 충동을 받아도 이를 인내하고 완곡어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논조이다. 이 현상도 본인은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제5장에서는 그러면 이렇게 여성에게 불공평한 어휘로 가득찬 '사전을 
        불태워야 하는가?'하고 반문한다. 사전에서 그런 어휘를 삭제한다고 그런 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노력을 해야겠지만, 인간(남녀)의 의식과 사회제도가 
        바뀌면 저절로 언어가 변화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우리는 언어를 바꿀 수 있을까' 자문해 본다. 
        궁극적으로 언어는 권력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국가에 의한 국민의 절대적 통제는 언어의 통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p. 224). 어느 정도까지는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언어에 대한 '작위적 행위'가 프랑스 대혁명에서 평등어를 
        낳았고, 마르크시스트적 용어, 식민지적, 인종주의적, 반성차별주의적 언어를 
        창조해 냈다. 그러나 작위적으로 주조된 어휘가 다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결혼한 여성과 미혼여성을 가리지 않는 Ms.라는 논리적으로 좋고 편리한 단어도 
        초창기의 격렬한 여권운동가의 이미지가 담겨있어서 자유로운 미국사회에서도 
        제한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것은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그 자체의 내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Every word has its own history'). 

        본서의 결론은 느닷없이 가볍게 잘라버린듯한 느낌이다.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경멸적 언어에 대한 투쟁이다'로 끝난다. 이 
        책의 마지막까지 여성은 전투적 태세를 취하고 있는데, 남녀의 적대적 관계는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남성과 여성이 변화하는 
        세계관을 따라 화해하여 상호보완적 조화를 이루고 상호 인격을 존경해 나가는 
        가운데 사회제도와 가치관이 바뀌고 문화공동체의 일부인 언어의 평등성도 
        성취되리라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