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적부부관계 정립을 위한 소고
        저자 한경혜
        발간호 제044호 통권제목 1994년 가을호
        구분 ARTICLE 등록일 201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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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Ⅰ. 거시사회의 변화와 부부관계 
        Ⅱ. 동반자적 부부관계의 개념 
        Ⅲ. 현대 한국부부관계의 진단:동반자적 관계로부터의 거리는? 
        IV. 동반자적 부부관계를 향하여 : 변화의 과제 
        Ⅴ. 맺는말 


        요즘 우리 주변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용어들을 꼽자면, 그 표현의 강동에서는 
        약간씩의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 '변화'를 그 중의 하나로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정내 부부의 역할도 '변화'와 관련되어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메뉴 중의 하나인 듯 하다. 예를 들면 '신세대 주부: 같이 일하고 같이 
        논다'(조선일보, '94. 1.16)는 식의 가사분담 새 풍속도 소개라든지, 텔레비전 
        드라마 등에서 부쩍 자주 접하게 되는 작아진 목소리의 남자들과 가정내에서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드센(?) 여성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글자 그대로 집안의 
        장(長)으로서 명확한 자리매김이 되어 있어, 구태여 정의하려는 노력이 필요치 
        않았던 한국 남성의 가장권에 어떤 심상치 않은 변화가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게 된다. 

        현대 한국가족 내의 부부관계, 남녀의 역할과 지위는 얼마나 변화하고 있는가? 
        과연 신문, 잡지 등에서 묘사하는 대로 보다 평등한 동료적 관계로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특정 계층/연령층의 일부에서 나타나는 변화가 가시화되면서 
        변화의 보편성 정도가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진 것일까? 그런데 이러한 의문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막상 자료나 문헌들을 찾아보면 우선 소문이 
        무성한데 비하여 부부관계를 실증적, 체계적으로 파악한 자료가 별로 없어서 
        실제 논의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제한될 수 밖에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현대 한국가족의 부부관계를 가부장적 억압관계의 존속, 혹은 자본주의적 핵가족 
        이데올로기에 의해 변형된 가부장적 억압관계라고 보는 시각과, 의사결정 유형이 
        남성위주에서 부부공동형이 증가하는 등 보다 평등한 관계로 변화하였고 여성의 
        사회진출로 가정내 부부간 역학관계의 비대칭성이 완화되고 있다는 연구 
        보고들이 공존한다. 물 반컵을 놓고 '반컵이나 있다'로 보는지 아니면 '반컵밖에 
        없다'로 볼 것인지와 비슷한 시각의 차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현재 
        한국가족/부부관계 변화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부부라는 단위로 연결된 모자이크적 성격을 가진다고 표현하는 듯 하다. 필자는 
        이 글을 쓸 목적으로 몇쌍의 부부들을 만나보고, 최근 2년동안의 주요 일간지와 
        여성잡지를 뒤적이면서 현대 한국의 부부는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여 변화 할' 
        압력에 직면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이에 반응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우선 부부관계의 물적, 구조적 기반을 변화시키는 우리사회의 
        거시적 변화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 이러한 가족 외적 변화가 가족 내부로 
        어떻게 전환되면서 미시적 부부관계에 변화의 압력으로 작용하는가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이 때 영역에 따라 변화의 속도가 다르고 남성과 여성이 
        변화속도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가족 내부, 부부관계에서 긴장 및 갈등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가 살펴보고자 한다. 이와 연결하여 변화하는 미래 사회에서 
        바람직한 부부관계로서 '동반자적 부부'를 이루기 위하여 한국가족 내의 
        부부관계에서 극복하여야 할 점들에 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Ⅰ. 거시사회의 변화와 부부관계 

        사회의 기본 단위로서 가족은 거시사회와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변화를 
        주도하고 또한 변화에 영향 받는다. 산업화, 근대화로 요약되는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한국가족이 가족가치, 가족구조 등 다양한 측면에서 어떠한 
        변화를 보여왔는가는 이미 많은 자리에서 논의가 된 바 있다. 

        그런데 변화의 속도가 영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가족 내부에서 적응의 
        필요성과 갈등의 소지가 있게 된다. 한국가족은 자녀수의 감소, 핵가족화 등 
        구조적 측면에서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다양한 외형적 변화를 보여서 한국가족은 
        선진국 유형과 유사한 형태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가족관계 측면은 변화의 
        속도가 느려서, 가부장적 요소와 핵가족 지향적인 요소가 혼재하면서 비교적 
        전통적인 규범체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성별 분업 원리에 기초한 부부관계가 
        그 대표적 예이다. 

        산업화에 따른 일터와 가정의 분리와 함께 남성은 도구적 역할, 즉 가족부양을 
        책임지는 부양자(breadwinner)로서의 역할, 그리고 여성은 정서적 역할이 
        강조되는 성별 분업이 가부장적 요소와 결합되어 한국 가족 내에서도 자리잡은 
        것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와 함께 여성의 영역인 
        가정의 사회적 비중이 축소되고, 부부간의 사랑이 강조되는 부부 중심적 
        가족주의가 보편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성별 분업의 심화와 부부중심의 
        핵가족주의의 보편화 추세는 부부의 활동, 관심 및 책임이 뚜렷하게 격리된 
        결혼관계를 산출하면서 여성의 경제적 의존성을 증가시켰고, 부덕을 갖춘 현모양 
        처 이외에 늘 남편의 사랑을 받기위해 노력하는 또 다른 과제를 여성에게 
        부과하게 된 것으로 지적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회변화의 속도가 워낙 급격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랑받는 전업주부' 이데올로기가 확산되는 것과 동시에, 여성들의 고등교육 
        보편화와 함께 사회로 진출하는 여성들도 급증하였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의 표현을 빌자면 여성들이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private realm)과 
        남성들의 세계인 공적 영역(public realm)과의 "경계선을 넘어서게"된 것이다. 
        우리 나라 여성의 취업률 증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혼여성의 취업률의 증가는 기존의 성역할 분업구조를 
        변화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성의 취업률 증가는 우선 인구학적 
        변화에 따른 여성의 생애 과정의 변화에 그 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자녀수가 감소한데다가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어머니 됨'은 전 
        생애에 걸친 활동이라기 보다는 '생의 한 단계'가 되었다. 다음으로 경제적 
        필요의 증가를 지적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한 사람의 소득을 가지고 
        노력해서 성취할 수 있었던 상대적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점차 두 
        사람의 임금소득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나타난 가정 밖의 생산활동에서 기혼여성의 배제도 그 당시 산업화와 
        함께 번창, 확장하던 중간 계급, 즉 경제적으로 그럴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 
        시작되었다. 다음은 여성들의 교육수준의 증가와 이에 수반되는 자아실현 의식의 
        증가를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몇가지 요소들은 상호 연관되어서 상승효과를 
        가지면서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여성들의 사회진출의 증가와 함께 '남성은 밖에서 일하고 여성은 집을 
        지킨다'는 성 역할 개념은 상당히 약화되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어느 한 젊은 회사원이 쓴 칼럼에서 일부분을 발췌할 것인데 여성들의 이러한 
        변화를 필연적으로 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내 아내 직장의 한 남자 동료가 
        몇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고민을 털어놓더라는 것이다. 이 남자는 여자는 
        결혼하면 자기 일을 갖기는 커녕 그야말로 가정에 전념해야 하며 쓸데없는 
        외출도 하지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기 아내는 결혼 전에 
        했던 자신의 일을 결혼한 지 한참 지나 지금까지도 하고 싶어 안달이며 이로 
        인해 여러차례 다툼도 있었는데 자기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남자가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거 뭘 모르는 
        소리 하지 말아라. 요즘 여자들이 자신의 일을 갖고 그것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너무나도 강해서, 그 에너지는 마치 무너진 둑에서 
        쏟아져 나오는 성난 물결과도 같다. 이제 남편들은 그 무너진 둑 밑에서 놀란 
        눈을 하고 있는 개구리와 같은 신세이다. 성난 물결이 흐르는 대로 고분고분 
        흘러가야지, 괜히 그 물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커다란 개구리 입을 벌리고 
        항의하려고 하다가는 말 한마디도 하기 전에 성난 물결에 얻어 맞아서 물 속에 
        가라앉아 버리기 십상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가? 아내가 일찍 
        출근해 버리는 날이면, 샌드위치를 출근길에 사들고 와서는 사무실에서 커피와 
        함께 먹으며 아침식사를 때운다 이러고 보면 나도 무너진 둑 밑의 개구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개구리이다. 나는 이미 둑이 터질 것을 예감한 
        개구리이다. 또한 부질없이 성난 물결을 거스르지 않고, 대세의 흐름에 기꺼이 
        몸을 맡기는 개구리이다 '(여성신문, '94.3.11) 

        여성들 자신의 의식 변화뿐만 아니라 여성들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그리고 
        남성들의 기대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 한 예로, 요즘 
        남성들이 결혼 후에도 직장을 계속 다닐 여성을 배우자로 원하는 추세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세태는 신문, 잡지 등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 
        잘 나타난다. 

        '남성들은 집안에서 살림만 하는 아내보다는 경제력을 갖춘 맞벌이가 가능한 
        아내를 더 원한다. 혼자서만 경제적인 책임을 지기보다는 함께 벌어서 윤택한 
        생활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FEEL,'94.2).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가족의 의미, 부부관계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이러한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에 대한 준비정도에 있어 남성과 여성간에 
        어떠한 차이가 존재하는가. 이들이 부부라는 단위로 만났을 때, 차이에 따르는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가족과 사회는 어떤 딜레마와 도전을 안고 있는가? 미래의 
        부부관계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을 살펴보면 동반자적 부부관계로의 지향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추세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과연 그 구체적 내용은 
        어떠한 것으로 규정되어야 하는가? 급격한 변화의 와중에서 아직 만족할 만한 
        문화적 각본이 주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부부는 신체적 성차와 문화적/사회적 
        성차 가운데서 삐적거리면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갈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Ⅱ. 동반자적 부부관계의 개념 

        동반자적 부부라는 용어는 앞으로 지향하여야 할 남녀/부부관계의 성격에 대한 
        논의들에서 최근들어 자주 접하게 되는 개념들 중의 하나이다. 올해 1994년을 
        세계 가족의 해로 제정하면서 UN이 중심방향의 하나로 설정한 주제가 바로 
        '동반자적 가족(partnership families)'이다. 바람직한 미래의 가족관계에 관한 
        학술적 논의에서 뿐만 아니라(예: 조형, 1993; Barrett & McIntosh, 1982; 
        우에노 치즈코, 1991), '친구같은 동반자형 부부: 남편이 집안일 적극 도우며 
        공동취미로 부부금실 다진다'(여성중앙, '93.9)는 식으로 대중매체에서도 자주 
        접하게 되는 용어이다. 동반자적 부부란 무엇을 의미하며 그 구체적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이렇게 다양한 배경에서 쓰일때 이들이 모두 동의하고 있는 
        기본적 요소가 있다면 과연 어떤 것들일까? 

        부부간의 역학관계를 실증적으로 고찰하면서 동반자적 결혼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사회학자 Young 과 Willmott였다. 그들은 런던 동부 
        빈민가 젊은 아버지들이 휴일 아침 유모차를 밀고,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것을 관찰하고는 '동반자적 결혼(parnership marriage)' 영국사회에서 
        지배적 부부유형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들이 말하는 동반자적 부부란 
        육아와 가사관리의 주된 책임은 부인에게 있지만 남편이 이에 참여하고, 가족의 
        경제적 부양의 주된 책임이 남편에게 있지만 부인이 이에 일익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즉 남성은 부양자, 여성은 가사전담자라는 성역할 분업의 경계를 
        완화시키고 동료처럼 서로 돕는 부부관계를 지칭하는데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이 생산영역에 진출하면서 남편--아버지가 가족 생활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는 낙관적인 견해를 이들이 밝힌 이후 부부관계가 정말로 동반자적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연구들이 계속되었다. Bott(1957)는 
        그녀의 고전적 연구 "Family and Social Network"에서 영국의 부부관계를 
        '분리된 부부역할관계(segregated conjugal role relationship)'와 '공동의 
        부부역할 관계(a joint conjugal role relationship)'로 유형화하고, 두 형태가 
        공존하지만 점차 '공동성(jointness)'을 향해 나아간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부부의 역할관계가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맥락과 얼마나 직접적이고 
        유기적 상호관련성을 가지고 있나를 극명하게 보여준 이 연구에서 그녀는 
        '분리된' 부부관계에서는 일단 가사작업 역할 뿐 아니라 여가를 보내는 데 
        있어서도 남녀간 분리가 나타난다고 지적하였다. 결혼이 의미하는 바, 
        부부생활의 내용에 있어서의 남녀의 차이를 지적하여 그 유명한 '남편의 
        결혼/부인의 결혼(his and her marriage)' 개념을 구체화한 Bernard(1964, 
        1972)도 Bott가 관찰한 것과 같은 유형을 미국 부부에서도 관찰하고 이들을 각각 
        평행형(parallel)과 상호작용형(interactional type)으로 명명한 바 있다. 
        2차대전 이후의 이러한 연구들은 일반적으로 부부관계의 변화를 공동의 부부역할 
        유형으로 나아가고, 가족이 함께 하는 여가가 증가하면서 부부간 친밀성이 
        증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전망하였다. 

        Johnson 등(1992)은 최근의 실증적 연구에서 Young & Willmot가 점차 지배적 
        유형이 되어간다고 지적했던 동반자적/대칭적 형태, 즉 부양자 역할과 
        가사전담자 역할을 남녀간에 거의 비슷한 정도로 공유하는 유형이 가장 많이 
        관찰(42%)되었다고 발표하였다. 반면에 전통적 성역할 분업을 보이고, 여가 영역 
        및 시간사용 유형에 있어서도 남녀간 분리되고 비대칭적인 형태를 보이는 
        평행형은 과거에 비하여 매우 낮아져서 27%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가사노동의 성역할 분담체계에 있어서는 전통적 비대칭성이 비교적 유지되면서도 
        여가를 보내는 시간, 방식에 있어서는 비대칭성을 보이지 않는 새로운 복합적 
        유형이 나타난 점이다. Johnson등은 부부간 친밀도가 높은 이들을 '분화된 
        동료적' 부부라고 명명하였는데, 조사대상 부부의 21%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0%가 '역할역전'유형으로, 남녀간에 도구적 역할이 바뀌어서 
        여성이 주된 부양자였으며, 가사노동에 있어서 비전통적 성별 분업 형태를 
        보였으며 친밀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에 기초하여 이들 
        연구자들은 부부관계가 과거에 비해 성별역할 구분에 있어 융통성이 증가하고, 
        부부가 자신들의 일과 여가에 쓰는 시간을 구조화하는 방식에 있어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서구의 이러한 일련의 시도들을 살펴보면, 부부가 
        동반자적 관계로 나아가는가 평가하는 기준을 부부간의 역할의 분리(role 
        segregation)정도와 동료적/우애적 친밀감(marital commpanionship) 정도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UN에서 제시한 '동반자적 가족'의 개념(1993)을 살펴보면, 이 용어가 
        '민주적 가족'과 동의어로서, 위계질서에 기초를 둔 '억압적, 권위적 
        가족'(dominating family)에 반대되는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동반자적 
        가족의 주된 특징으로서 구체적으로 협동적 구조, 평등한 권리와 권력의 사용, 
        성역할 개념의 융통성, 함께 하는 가족활동(family activity), 가사일의 공평한 
        분배, 경제적 책임의 공유, 자녀양육의 공동책임, 공동 의사결정, 그리고 변화에 
        대한 개방성 등을 열거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권력이 한 사람(주로 남성)에 
        집중되어 있고, 성역할 분업에 의하여 가사일, 자녀양육, 의사결정권이 어느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가족공동의 활동이 없고 변화에 저항적인 가족을 
        권위적 가족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UN의 접근과 유사하게, 동반자적 부부관계를 '민주적' 혹은 '평등한' 
        부부라는 관점에서 정의하고 그 성격을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여성학 
        분야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예를 들면 미국의 여성학자 Kimball(1983)은 
        평등한 부부들의 관계상의 특징을 파악하고자 150여쌍의 부부들을 심층탐색한 바 
        있다. 그 결과,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고 있는 부부들의 공통된 특징은 
        권리와 책임을 공유하며, 서로 존중하고 개방적인 대화를 통하여 높은 친밀감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리, 책임의 공유란 부양자 역할, 가사노동, 육아, 
        의사결정에 있어 성별 분업체계에 기준하지 않고 융통성있게 서로 분담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가사노동이 자동적으로 여성의 책임으로 규정되지 
        않고 따라서 남편이 함께 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 즉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문화적 배경이 서구와 상이하고 따라서 가족에 대한 사회적 태도, 기대에 
        있어 차이가 나는 한국에서는 동반자적 가족이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이에 
        관한 기존의 논의는 주로 우리나라 가족의 가부장적 성격을 진단하고 이의 
        극복을 주장하는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조형(1993)은 
        자본주의와 우리나라 가족의 가부장적 성격이 어떻게 결합되어 남녀의 삶을 
        규정하고 제한해왔는가를 진단하면서 '권력에 기초한 권위적 가족보다는 모든 
        가족원이 사랑과 정서로 동반자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족으로의 변화'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였다. 한국의 부부관계에 대한 연구들은 일반적으로 전통적 
        가부장적 요소와 자본주의적 핵가족 이데올로기가 조합, 변형되어서 여성이 
        억압받는 측면과 역할분담,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불평등성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관계로부터의 극복을 평등한 부부로의 변화와 동일한 선상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자들의 시각은 앞에서 고찰한 서구에서 제시된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고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박민자(1992)는 여성들에게 
        직접 평등한 부부관계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여 현대 한국의 보통 주부들은 
        이에 관하여 어떠한 기준을 설정하고 있는가를 탐색한바 있다. 한국 부부들의 
        평등성정도를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미리 짜여진 연구자의 분석률을 그냥 
        적용하지 않고 연구대상자의 관점을 이해하려 한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20대에서 
        50대까지 연령층에 속하는 기혼여성 332명을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는 우리나라 
        부인들 역시 평등한 부부관계의 기준을 의사결정권, 경제권과 같은 권리와 
        가사노동, 육아등에서의 책임을 공유하는 정도에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서구의 부부들이 권리와 책임의 공유를 구체적 
        권리주장이나 책임분담으로 표현하는 반면, 우리나라 주부들은 연령에 관계없이 
        '인격존중'을 가장 강조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 '같이 의논해서 
        결정하는 것,' '동등한 의사교환'등 추상적 개념 속에 수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연구자는 우리나라 부인들이 부부의 평등을 
        관념적으로만 이해하고 있거나, 아니면 부부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격적 
        대우도 받고 있지 않고 상황을 반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Ⅲ. 현대 한국부부관계의 진단 : 동반자적 관계로부터의 거리는? 


        이상의 논의들을 정리해 보면 현재 우리나라 부부가 얼마나 동반자적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부부간에 과연 얼마나 책임과 
        권리의 공유가 이루어지며 인격적으로 서로 존중하는 친밀성 높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탐색으로부터 접근될 수 있겠다. 

        최근의 신문, 잡지들을 뒤적이다 보면 변화하는 부부관계를 다룬 보도, 
        기사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특히 여성잡지들은 이와 관련된 기획기사들을 
        경쟁적으로 다루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기사들의 제목을 몇가지 예로 들자면, 
        '신세대 주부 : 같이 일하고 같이 논다'(조선일보, 94. 1. 6 ), '남편과 
        친구처럼 동등하게 지낸다 -- 설거지, 청소는 남편이, 빨래, 육아는 아내가. 
        친구들 모임에 꼭 부부동반으로 참석'(여원, 93. 2.), '달라진 여성 달라지는 
        사회 : 젊은 부부 가사분담 새 풍속도 -- 집안일 절반씩 나누고 아기보기도 
        교대로'(한겨레), '요즘 부부 -- 생활비는 분담, 각자지출 불간섭'(조선일보, 
        93. 1. 1), '친구 같은 동반자형 부부 : 남자 여자일 구분짓지 않고 형편 
        닿는대로 가사분담,' '서로 프라이버시 존중하고 가사돕지만 각자의 재산은 
        명확히 구분'(여성중앙, 93. 9)등 부부관계의 변화를 다루는 기사들이 가히 
        홍수를 이룬다고 할 정도이다. 이들 기사들은 주로 '가사분담' '경제권 공유' 
        '여가 공유'를 그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대부분이 성역할 경계의 완화와 
        여가활동에 있어서 Bott가 지적하였던 남자간 비대칭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내용들임을 볼 수 있다. 

        과연 한국 부부는 매스컴에서 떠들듯이 동반자적 유형으로 변화하고 있는가? 
        여자가 공적 생산활동에 참여하면서 남편/ 아버지가 가족생활에 적극 참여하게 
        되고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다는 단순하고 낙관적인 견해가 우리 현실에 대한 
        정확한 관찰없이 그냥 매스컴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필자의 견해로는 
        무성한 논의가 행동의 변화보다 앞서 있고, 특정 연령층/계층의 일부에서 
        나타나는 변화가 확대되어 가시화되면서 변화의양, 보편성 정도가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지는 것으로 보인다. 기사내용을 하나 예로 들어 보자.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다 보니 남편의 부엌 출입이나 가사일은 당연한 몫이 
        되었다. 그것을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남자의 체면을 깎는 일로 여기는 신세대 
        남편들은 거의 없다. 솔선수범해서 자연스럽게 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남편들도 많다. 아침 저녁으로 당번을 정해서 식사준비를 하고, 아내가 
        회사이로 늦는 날은 먼저 집에 가서 저녁을 기다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부부관계도 허물없고 자연스러운 친구관계처럼 동등해져서 아내들의 모임에 
        꺼리낌없이 참석하는 남편들도 많아졌고, 모든 의사결정도 부부가 충분히 상의한 
        끝에 내리는 등 결혼생활 방식이 기성세대의 구조와는 차이가 많다'(FEEL,'94. 
        2). 
        그런데 신문이나 집지의 이러한 기사는 그 정확성 여부를 떠나서, 변화되는 
        부부상을 대중에게 가시화한다는 측면에서 현재 부부관계의 내용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한국부부의 모습을 실제보다 더 평등한 유형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이렇게 앞서가는 대중매체에 의하여 
        부부관계가 실제 그러한 방향으로 변화가 촉진될 수도 있다. 필자가 만나본 
        주부들은 대부분 '요즘 부부들은 많이 평등해졌다'고 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남편은 '아이도 잘 봐주고 가정을 중시하는 요즘 남자'들에 
        비해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주부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을 물으면 '요즘 그렇잖아요 다들, TV를 봐도 그렇고, 신문을 
        봐도 그렇고' 하는 식의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때 이들이 가지고 있는 '요즘 
        남자'들 이미지는 신문, 잡지에서 본 '좋은 아버지가 되기위한 모임에 나가는 
        남자들'이나 '같이 일하고 같이 논다'는 남편들일 경우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부부관계의 평등성 정도에 관하여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우리 앞 세대와 
        비교하여 평가하곤 한다.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졌다든지 남편들이 가정적이 
        되어간다든지 하는 일상적인 인식들은 많은 경우 이러한 역사적 준거(historical 
        frame of reference)에 기준하여 형성된다. 예를 들면 부부관계의 여러 측면에서 
        남성들이 여성보다 유리함에도 불구 하고, 아버지, 할아버지가 당연히 누렸던 
        특권을 포기, 양도해야 하는 경우 때문에 남자들은 '못살겠다'고 엄살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사적 영역이 역사적으로 낮게 평가되어 왔기 때문에, 이제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고 남성의 가정에 참여할 것이 요구되는 것을 남자들은 
        여성의 지위는 '높아지고' 남성의 지위는 '낮아지는'것으로 지각하게 되며 
        따라서 변화를 보는 시각이 남성이 더 부정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또하나 중요한 비교 기준이 소위 '실용적 준거틀(pragmatic frame of 
        reference)'이라고 불리는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이 과연 어떠한가'하는 
        기준이다. 말하자면 '다른 남편들에 비하면 우리 남편은 얼마나 보수적인가' 
        하는 식의 해석에 있어서의 기준을 이야기한다. 이런 측면에서 매스컴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활자화된 보도나 TV화면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평등한 
        부부의 모습은 그 정확성, 즉 우리사회에서의 일반성, 보편성 여부를 떠나 
        엄연한 사회적 실체로서 부부들의 일상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부가 얼마나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 하는 원래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신문, 잡지 등의 대중매체에서 소개하는 이러한 평등한 
        부부상이 우리 부부들의 일반적 모습은 아니라고 할 때, 그렇다면 현대 
        한국사회의 부부관계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경제생산활동 참여로 인하여 
        여성들의 삶은 급격히 변화하였지만, 나녀양육과 집안 일이 '여성의 일'이라는 
        저통적 관념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고 본다. Ogburn이 이야기한 소위 
        문화지체 현상이다. 이러한 예는 아이러니칼하게도 동반자적 부부상을 다루는 
        신문, 잡지의 기사들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다음은 어느 
        여성지에 동반자적 길을 가는 부부로 소개된 문인부부의 이야기를 필자가 발췌, 
        정리한 것이다. 그 잡지에는 이 부부의 이름과 사진이 나와 있기 때문에 본 
        글에서는 이들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여성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들의 
        직업도 '문인'이라고 포괄적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남편은 교수이자 문인, 부인도 문인. 출판사를 공동 운명. 남편은 대학 강의 
        때문에 책을 만드는데 실제적 도움을 주지 못하고 부인이 출판사의 XX실장이지만 
        편집, 배본, 경우에 따라서는 광고 유치까지도 하는 '전전후 사원'이다. 그러나 
        월급은 한푼도 받지 않는다. 남편은 "언젠가는 아내가 농담처럼 '참 잘도 
        부려먹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고 이야기하였다. 부인은 새벽 5시에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데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다 학교에 가고 나면 그때부터 부지런히 집안 청소를 
        하지요. 나도 출근 준비를 해야 하니 아침시간은 눈 코 뜰 새가 
        없어요 그렇지만 어쩔 수가 있나요? 남편은 남편대로 바쁜 걸요." 요즘 신세대 
        부부들은 맞벌이일 경우 가사도 분담해서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내 경우는 
        그것이 잘 안된다. 당연히 집안일은 아내 몫이라는 남편의 사고방식도 한 
        원인이겠지만, 그보다도 내가 그걸 원치 않는데 그 이유가 있다. 남편이 직업이 
        교수다 보니 집에 들어와서도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가사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전담해야 한다…나 역시 사무실에 나가 일을 하다보니 요즘은 집안 
        일이 힘에 부칠 때가 많다. 그러나 어쩌랴. 현실이 그런걸. 나는 가정부를 두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모든 집안 일은 내가 다 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가끔 도와줄 때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래도 공부에 지장을 
        줄까봐 될 수 있으면 아이들 손을 안 빌리는편이다." 

        이 부부의 경우는 한국가족에 있어서 부부관계/성역할에 대한 태도와 행동 
        측면에서 변화되지 않은 부분과 변화된 부분이 혼재하면서 그 결과가 여성의 
        '슈퍼우먼적(?) 역할과다'로 나타나는 매우 흔한 예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부인이 사회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사일은 전적으로 부인의 책임이며 
        이는 남편과 부인 양측의 전통적 성역할분업 태도에 의한 것이다. 부인으 ㄴ이에 
        대해 남편에게 불평하거나 이를 변화시켜야 할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남편이 내가 집안일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인으로 활동하기를 강력히 바라고 
        그것을 가능하도록 해준 남편에게 감사한다.'로 이야기하고 있다. 부인이 공적 
        영역에 참여하여 몇사람의 몫을 수행하면서도 그 경제적 가치를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부인의 생산활동을 '남편의 비지니스를 돕는 
        것으로'해석해 버리기 때문이다. 부인 자신은 가사일에 대한 기준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집안일에 힘에 딸려요"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집안일을 '남에게 
        맡기기' 싫고, 다른 가족원들의 도움을 받는 것조차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른 
        역할 수행에 지장을 줄까봐'사양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보기에 가족 외적 
        영역에서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자아실현을 함께 하는 동반자적 부부'라면, 
        이러한 관계가 가족 내부로 전환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직업이나 교육수준 등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구체적 문제의 양상은 이 부부의 경우와 다르지만 유사한 
        형태의 가치관과 행동의 지체가 혼합되어 여성의 일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과다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족내에서의 문화지체 현상은 어떤 부부들에게는 갈등, 부부관계에 대한 
        불만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변화된 부분과 변화되지 않은 부분이 만나 
        부부간에 긴장원으로 작용하게 되는 예를 한번 들어보자. 필자가 1990년 농어민 
        후계자 연합회 경기도 지역 모임에 후계자 부인들을 대상으로 가족에 관한 
        강의를 부탁받고 참석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벌써 몇년째 포도밭에 약을 칠 때쯤 
        되면 어김없이 부부싸움을 하게 된다는 한 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항상 남편의 의견에 따라 마지막 결정이 이루어지는데 그 해에는 부인도 자기의 
        주장을 쉽게 굽히려 들지 않았다. 왜냐하며 그 전년도에 이 부인이 주장하는 
        것과 동일한 약을 사용한 이웃집의 소득이 이 가정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었다. 
        소득에 관한 일이고 이웃의 뒷받침 자료도 있었고 해서 부인이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자 그에 대한 반작용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남편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부인이 논리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면서 설왕설래가 꽤 오래 진해오디었던 
        모양인데 도중에 갑자기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엉뚱하게도 "당신 여자가 그 
        머리모양이랑 하고 있는 꼴이 그게 뭐야? 여자답지 못하게!"였고, 이 말다툼은그 
        해에도 남편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고 한다. 이 부인은 "선생님,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요!"하고 몇번을 반복해서 외쳤고, 나는 부인의 그 
        한마디에 이 부부의 역학관계의 현주소와 부인의 불만의 내용을 압축하여 느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한 당사자 뿐 아니라 그자리에 있던 30여명의 후계자 
        부인들 거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필자를 향하여 쏟아 놓았던 이야기는 
        '집에서 예쁘게 치장하고 애들 돌보고 남편 기다리는 그런 여자다운 부인을 
        원하면 우리에게 농사일은 왜 그렇게 많이 시키느냐?'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농촌의 경우 연령별/성별 선택적 이농현상으로 현재는 여성노동이 가족농적 
        생산구조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성들의 농업노동 
        참여가 급증하였다. 따라서 농업 생산영역에서 '적극적 동업자'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여성다운, 사랑?z을 수 있는 아내'라는 양립하기 매우 어려운 요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영역간 문화지체와 남녀간 지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경우이다. 

        다음의 글은 한 젊은 회사원이 '결혼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쓴 
        칼럼의 일부분이다. 글 서두에서 그는 요즘 여성들은 결혼생활에 대한 사고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고, 그러한 측면이라고 생각하는 몇가지를 나열하고 
        있는데, 

        '요즘 여성들은…맞벌이 부부의 경우 가사노동의 분담을 동등하게 해야 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물론 이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문화적 속성이나 
        성의 역할을 볼 때 남자들이 가사노동을 분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편들이 알아서 가사일을 많이 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지나친 기대를 갖지 않느 것이 실망을 덜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개발에는 
        관심도 많고 중요성을 부여하면서 여성본연의 역할에 대해서는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것 같다…그러나 가정주부로서의 역할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차라리 
        가정주부의 역할이란 절대적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타장할 지 
        모르겠다'(여성신문, '94,3.18) 

        필자의 의견으로는 이 글에 나타난 것과 같이 여성 본연의 역할은 가정주부이며 
        남편들의 집안일 참여는 남편들의 호의에 의존해야지 그 이상의 기대는 우리 
        실정에서 지나친 비현실ㅈ거 요구라고 보는 이렇나 견해가 아직까지 대부분의 
        한국남성ㄷ르이 여성과 여성의 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이 아닌가 
        한다. 여성의 경제참여는 인정하겠지만 이것이 가족 내부로 투영되어 남성의 
        역할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저항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그 잣대의 
        이중성은 인식하지 못하고 여성의 삶의 변화가 어떠한 형태로든 갖고 내부로 
        전환되려는 시도를 '여성이 비현실적인 것'으로 비판해 버리는 것이다. 

        다음의 글은 어느 신문에서 발췌한 것인데 역시 붑간 남녀 역할에 대한 
        우리나라 남성들의 이중적 시각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해준다. 어느 젊은 작가가 
        쓴 컬럼인데 그 작가와 마찬가지로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는 후배를 만나서 나눈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그 중 일부를 보면, 

        " 생활이 조금이라도 풀리면 (아이를) 애기엄마한테 맡길텐데/" "그건 남자들 
        생각이지. 제수씨 생각은 다를걸." "집사람 생각이야 다르겠지요. 어떻게 
        다른지는 말을 꺼내봐야 아는데 내 벌이가 빤하니까 말도 못 꺼내요. 그러니 
        모르지요 전업주부의 희망이 있는지.""형 우리 동네 탁아소에서는 탁아비를 
        부모들의 수입에 기준해서 매기려고 계획하는 모양이에요. 그럴 경우 부부의 
        수입을 합산하기 보단 엄마의 수입으로 계산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여자가 일나가기 때문에 탁아소에 맡기니까 당연히 
        그래야지요." 나는 후배의 견해에 옳다 그르다 토를 달지 않았다. 일견 근거가 
        있게 보이기도 하지만 육아느 엄마의 몫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어서 문제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가사와 육아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 후배와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여성신문, 1994.3.11)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생산양식의 변화가 직접적이고 주된 영향을 미친 대상이 
        남성이었다면, 최근의 경제적 변화는 여성을 공적 영역에 끌어들임으로써 
        여성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쳤고, 남송보다 여성의 생활양식을 변화시켰다. 
        따라서 새로운 경제적 현실에 적응하는데 남성이 여성에게 뒤지게 되었고 이를 
        Hochschild(1989)는 '여성에게 있어 경제가 변화하는 환경이라면 남성에게는 
        바로 여성이 변화하는 환경'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런데 변화하는 경제적 필요와 
        기호에 적응하여 여성이 변화하는 속도만큼 빨리 남성이 '여성의 변화'에 
        적응하여 변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시사회에서의 문화지체현상이 가정 내에서 
        '남녀 지체(gender lag)'로 전환되어 나타나게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남편과 
        아이뿐 아니라 내가 삶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밝히는 신세대 주부들과의 
        토론에서 '변화하는 가족구조에서 제일 어리둥절해진 것이 남자인 것 
        같다.'(조선일보,94.3.5.)고 토로한 한 젊은 남자의 이야기는 바로 여성과 
        가족의 변화 와중에서 적절한 해석을 내리지 못하는 한국 남성들의 지체현상을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싶다. 따라서 가족은 '비정한 사회로부터의 
        도피처'(Lasch,1977)라기보다는, Hochschild가 지적한 대로, 이러한 문화지체가 
        일상생활에서 조정, 협상되는 영역으로 나녀지체에서 야기되는 긴장을 
        완화시키는 주요 완충장치(major shock absorber)라고 볼 수 있겠다. 현재 
        한국부부는 남성/여성의 역할, 부부관계에 대한 문화적 기대가 급격히 변화하는 
        와중이기 때문에 잘 구성된 새로운 문화적 각본이 아직 없고 따라서 부부간의 
        조정 과정은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부인은 남편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남편은 부인에게 어떤 기대를 하는가. 남편이나 부인들 자신들도 이를 
        확실히 알지 못하고 모호한 상태에서 이중잣대를 쥐고 있는 듯하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 가사일과 공적인 일에 대한 이러한 이중성의 뿌리깊은에 
        주목하면 우리나라의 부부관계는 명백히 공식화된 부권이나 남성권위 같은 것은 
        과거에 비해 감소한 듯 보이지만 평등한 부부, 동반자적 부부와는 아직 많은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오는 남편과 집안일을 하는 
        아내라는 원칙은 평등한 분업, 평등한 교환관계가 아니라 남성의 이해가 
        지배적인 불평등한 교환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이 경우에도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는 여전히 제한되어 있다. 아내의 의사결정권이 증가하였다고 
        하지만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총괄적 권한(orchestration)을 가진 남편이 
        골치아프고 번거로운 일을 부인에게 인계한 도구적 권한(implementation)에 
        지나지 않는 측면이 발견된다. Goode(1963)가 일찌기 지적했던 남자의 부정적 
        권위(negative authority), 즉 아내가 반대한다고 해서 남편이 못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남편이 반대하기 때문에 부인이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혹시 한국 여성은 사회 변화의 와중에서 오히려 역할 과중 부담의 
        어려움만 더 짊어지게 되는 것인가? 한국의 부부관계는 얼마나 오랜동안 이러한 
        여러 영역에서의 지체현상을 그 안에 포함하고 일상생활에서 부딛혀 나가야 할 
        것인가? 앞으로 동반자적 부부관계를 지향하면서 현재 한국가족에서 무엇이 
        바뀌어야 할 것인가? 이런 과정에서 어떤 문제와 긴장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어떻게 하면 이들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인가? 다음은 부부의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고 힘들어 하지 않는 그야말로 동반자적 부부관계를 
        지향하려면 우리 가족/부부관계의 어떤 부분들이 극복되어야 하는가하는 점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IV. 동반자적 부부관계를 향하여 : 변화의 과제 

        현재 한국가족의 부부관계를 살펴 보건대, 역할가 여가를 융통성있게 공유하며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사랑에 기반하는 동반자적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문제의 극복과 변화의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혹자는 민주적 부부관계로 
        가기 위한 노력과 변화의 가능성은 전적으로 남성의 몫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남성, 여성, 그리고 부부 단위의 미시적 수준에서의 
        변화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극복, 가족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지원체계의 
        마련 등 거시사회적 수준에서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누차 지적한 대로, 부부관계는 이들이 상호 연관되면서 조정되는 바로 한 가운데 
        자리하면서 복합적이고 중층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논의의 편의상 남편과 부인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서 이러한 상호연관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동반자적 부부관계를 논의할 때 항상 제일 머저 거론되는 것이 
        남성의 갖고역할 참여의 확대이다. 불평등한 부부관계 개선의 핵은 가정내 
        역할의 비대칭성을 극복하는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성의 가족역할 
        참여정도에 관한 기존의 논의는 첫째, 가사분담정도, 둘째로는 그 중에서도 
        자녀양육의 과제를 따로 고려하여 '아버지'역할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 
        살펴보는 두가지 큰 흐름으로 나누어진다. 아버지의 적극ㅈ거 육아 참여는 첫째, 
        자녀의 측면에서 볼 때 발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최근 축적되기 
        시작하였고, 둘째는 남성 자신들에게도 부성의 발견, 자녀와의 일상적 
        유대감이라는 보상 등의 측면에서 긍정적 경험이라는 시각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는 린튼이라는 사람이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아버지들의 광장(Father Forum Workshop)'이라는 모임이 있다. 이 모임에는 
        30∼40대 남자들이 주로 참여하는데 이들은 2차대전 후 미국이 경제적으로 한창 
        번창할 때 평생을 돈버는 일에 매달렸고 그것을 바로 '아버지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세대들이다. 이들은 그러한 아버지 
        상이 사회적으로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다고 인식하고 또한 동시에 그들 
        스스로도 자녀와의 친밀성 구축을 원하기 때문에 이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다. 이 
        모임에서는 새로운, 보다 적극적인 아버지 역할의 내용, 그와 수반되는 문제점 
        등에 관하여 서로 의견을 나누곤 하는데, 이때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하는데 
        따르는 이려움이 자주 논의의 주제로 등장한다고 한다. 

        사회가 남성을 '가족부양자'로 계속 규정하는 한 남성들의 가족내 역할 참여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측면의 어려움을 
        강조한다. 우선 무엇보다도 남성의 직업 역할 구조가 남편/아버지로서 가정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애너지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직업역할이 남성의 
        일차적 역할로 규정되므로 남성으로서의 정체감, 자아가치 그리고 사회적 지위의 
        획득에 직업에서의 성공은 매우 중요하며, 따라서 가족역할과 경쟁관계에 있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부양자 역할의 성공적 수행은 많은 경우 직업역할에 
        투자한 시간 및 에너지와 비례하게 된다. 전문직, 관리직의 경우에 성공은 
        승진을 의미하며 이느 결국 책임 및 시간투자의 증가를 요구하게 되고, 생산직 
        노동자의 경우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는 초과 근무, 야간근무 등을 하여야 한다. 
        따라서, 효율성의 추구 및 노동력 극대화를 기본원리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개인적, 가족적, 일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다. 남성에게 
        있어 일은 인생의 '중심'관심사이므로, 남성의 적극 참여를강조하는 가족 
        이데올로기, 결혼에서의 '친밀성'이데올로기와 양립될 수 없다는 관점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남자들의 집안일 참여 증가를 기대하려면 무엇보다도 우선 '남성다움'에 관한 
        사회적 정의, 여성들의 기대, 그리고 남성들 자신의 인식도 변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남성들이 현실적으로 직장에 투자하는 
        시간을 고려해 볼 때, 근무시간, 근무형태의 융통성 증가 등과 같은 직업구조의 
        변화, 즉 사용자측의 뒷받침도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만성, 여성들의 성역할 
        의식, 직장여건 등을 고려해 보면, 이러한 변화 없이, 남성에게 '직장에서의 
        성공은 기본으로, 거기에다 가정내 영역 참여/표현적 역할까지' 요구하는 것은 
        슈퍼우먼과 같은 슈퍼맨을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남성, 여성 모두가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와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성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출세는 바로 
        '가족'을 위한 것이라는 가족이념이 지배적이지만, 미미하나마 약간으 ㅣ변화 
        조짐이 보이는 듯 하기도 하다. 직장 차원에서도, 비록 대기업에 국한되었지만, 
        주 중 하루를 가정의 날로 지정하여 평소보다 일찍 귀가시킨다든지, 격주나 매주 
        토요일 휴무제를 실시한다든지, 조기 퇴근제나 융통성있는 근무시간제(flex 
        time)를 도입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당장 남성을 가족으로 
        끌어들이는 직접적 효과는 혹시 적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그러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배경 조건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배경조건의 변화가 주어질 때, 동반자적 부부로의 벼화는 이제 남성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많이 달려있는, 남성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실제로는 
        배경조건의 변화도 그 핵은 남성에게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러면 여성들은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우선 주부들 자신이 집안일에 대해 
        얼마나 집착하는가 한는 여성들 자신의 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남자들을 일상적인 집안일에 동참시키려면, 내가 한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는 
        여성들 스스로의 자세를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세는 그 
        일이 여자의 일이며, 따라서 그 일을 수행하는 방법에 관해서 가장 잘 아는 것은 
        여자라는 여성들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들이 집안일을 거들려 
        해도 '잘 못하니까아내가 싫어한다'는 변명(?)에도 이런 이유에서 반박할 근거를 
        잃게 되고, 나아가서는 남성들이 '집안일에 대한 무능력'을 가사분담 
        회피전략으로 이용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본다. 어는 여성지에서 발췌한 33세 
        남성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그래서 애가 하는 집안일은 아내가 시키거나 너무 힘들어 할때 집안 청소를 
        해주는 것, 쓰레기를 버리는 것, 설거지 한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내가 한 
        일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것 갗다 . 내가 일을 하고 나면 아내는 '아니 
        설거지를 했다더니 웬 거품이 그대로 남아있어요?....하면서 못마땅해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장모님의 엄중하신 분부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 5개월 쯤 
        되었을 때 마침 손빨래를 할 것이 있어서 빨래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오신 
        장모님에게 들킨 것이다. 내 모습을 보신 장모님께서 노발대발 하신 거다. 
        아내는 현대식 부부 운운하면서 장모님께 설명하려 했지만 장모님늬 강한 어조에 
        눌려 다시는 남편에게 빨래를 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위의 예는 또한 특히 우리 나라에서 부부관계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의 배경조건에 관해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고 본다. 부부와 
        연결된 확대가족, 즉 부모 세대들과의 연관성이다. 우리나라 가족이 핵가족화 
        되어가고 있다는 논의는 꾸준히 지속외어 왔지만, 그 기능, 정서적 측면으로는 
        아직도 확대가족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하겠다. 같은 여성지에서 발췌한 
        다음의 예와 같은 경우, 남편이 집안일을 돕는다면 아마 먼저 표출되는 문제는 
        고부간 긴장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추정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장남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때문에 아내의 집안 일을 마음대로 돕지 
        못한다. 우리 어머니세대들이 다 그렇듯이 어머니도 남정네가 부엌에 들어가면 
        안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남편들이 설거지를 한다, 빨래를 한다 하는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이다. 아내도 나의 이런 입장을 잘 이해해주기 
        때문에 나는 신문이나 펼쳐들고 점잖게 앉아서 권위있는 남편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하지만 어쩌다 친구들의 모임에 한번씩 갔다오고 나면 아내는 
        '친구 남편들은 집안 일을 잘 도와준다더라'하면서 투덜거리기도 하고 세탁기 
        선전에 나오는 '자! 남편들도 빨래를 하자'가사를 흥얼거리며 올해 주부들이 
        뽑은 최고의 인기가요라고 눈을 흘기기도 한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언급한 Bott의 연구에서 부부간의 역할공유성 정도는 
        부부가 사회적 관계망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수록 남녀간 역할이 
        분리되어 수행되는 것을 관찰하였다. 죄근에 Bott의 이 가설이 동양문화권에서도 
        성립되는지 살펴보기 위하여 일본의 부부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Ishii-Kuntz & Maryanski,1992),일본에서도 이 관련성이 아주 강하게 
        관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친족과 거주지가 가깝다든지 기능적, 정서적 
        상호관계가 높을수록 성역할 분업에 입각한 부부역할 관계가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관련성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결과는 아직 없지만, 부모 
        세대와 관계가 밀접할수록 전통적 역할 분담체계 내에서 부부관계가 
        이루어진다고 보아도무리가 없을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가사 보조자가 
        필요한 경우, 남편의 참여 확대 보다는 친척과 같은 사적 지원망을 활용하는 
        경우나, 파출부 서비스등을 구입하는 형태가 일반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부모세대와의 조정작업이 동반자적 부부관계 형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을 
        구성한다고 하겠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말 인내를 가진 장기적 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아버지보다 세상을 닮는다'라는 아라비아 지방의 
        속담이 있다지만, 노인 세대들이 그렇게 쉽게 변화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인 듯 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앞으로 한국가족에서 진정한 
        동반자적 부부관계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현재 우리 젊은 세대들이 우리의 아들, 
        딸들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시각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겠다. 



        Ⅴ. 맺는말 

        어떠한 이데올로기나 물적 조건에 의해 부부 중 누구라도 부당하게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는 인간적 관계, 동료적 친밀감과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 그래서 
        상대편이 조금이라고 힘든 기색이 있으면 언제든지 짐을 같이 나누어 질 수 있는 
        관계... 이 글을 준비하면서 접한 많은 논의들이 명시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희망하는 동반자적 부부의 모습들이었다. 너무 낭만화된 시각으로 가족을 
        바라보는 비현실적 희망이라고 단언해 버리고 않은 것이 이 글을 맺는 필자의 
        희망이다. 갈길이 무척 멀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워낙 복잡한 문제들이 엉켜 있는 주제라서 논의가 과일반화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고, 거시사회적 변화와의 연관성을 지적하다보니 맞벌이 부부들에게 
        논의가 집중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 구체적 내용에 있어서는 전업주부 가정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나, 현재 경험하고 있는 문제, 나아가야할 방향 등에 있어 
        근본적 성격은 공통점 또한 크다고 본다. 계층에 따른 차이도 마찬가지로, 지면 
        관계상 다루지 못하였음을 지적하고 싶다. 동반자적 부부관계의 구체적 내용과 
        모양새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각각의 부부들이 단 위가 되어 그들 나름대로 
        만들어가야 하는 '끊임없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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