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협박 수반 여부를 중시한 스페인 법원의 최근 성범죄 관련 판결, 그리고 여성대상 폭력 반대 시위
        등록일 2018-12-14

        폭행·협박 수반 여부를 중시한 스페인 법원의 최근 성범죄 관련 판결,  

         그리고 여성대상 폭력 반대 시위 

        곽서희 로테르담 에라스무스대학 사회학연구기관 국제개발학 박사과정

        • 유엔(UN)이 지정한 여성대상 폭력 근절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he Elimination of Violence against Women)인 지난 11월 25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여성대상 폭력 철폐를 주장하기 위해 수천 명이 운집한 대형 시위가 개최되었다.  마드리드뿐만 아니라 스페인 내 다른 주요 도시들에서도 이와 같은 시위가 개최되었다. 본 시위는 거리행진에 이어 지난 1년간 이전 또는 당시 현재 배우자에게 살인을 당한 44명의 여성 피해자들의 명단을 읽어내려 가는 것으로 끝났다.
        • 2003년부터 스페인은 여성대상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 인원과 정보를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2018년까지 총 999명의 여성(972명 성인, 27명 아동)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헌법에 근거하여 설립되어 스페인 법관들의 활동을 규율하는 기구인 사법위원회(General Council of the Judiciary, Consejo General del Poder Judicial)에 따르면, 스페인 법원에는 2017년 한해에만 16만 6천 건 이상의 젠더기반 폭력에 관한 사건이 접수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2016년 142,893건에 비해 대비 약 16% 가량이 상승한 수치이며 스페인 사법당국에서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2017년 기준 총 166,620건의 젠더기반 폭력 사건 중 여성이 피해자였던 경우는 158,217건에 이르렀으며, 그 중 48,110건은 외국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였다. 2017년 사건의 약 69% 가량은 피해여성이 직접 법원에 소송을 걸거나 경찰을 통해 접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이번 시위의 열기가 뜨거웠던 데는 사실 이틀 전인 11월 23일, 스페인 법원의 판결도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주에 위치한 예이다(Lleida)법원에서 한 술집에서 만난 일반 여성을 뒷골목으로 데리고 가 성폭행한 남성 2명에 대해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한 것이다. 중범죄로 처벌하지 않은 것에 대해 법원은 "위협을 가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두 남성의 행위가 강간은 아니다"라고 보았다. 또한 판결문에서 "여성은 술과 항우울제 복용으로 인해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약해진 상태였고, 이는 가해자들이 폭력과 같은 압력을 굳이 가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으며 가해자들은 여성의 취약한 상태를 이용한 것이다"라고 명시했다. 이와 같은 판결이 알려지자, 온라인상에서는 스페인 시민 수천 명이 법원의 판결 내용에 격분했다. 여성 피해자가 멈춰달라고 애원하고 반대 의사 표시를 분명히 했음에도 신체적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보고, 여성 피해자의 상태를 언급하며 귀책사유를 돌리는 것과 같은 판결에 수많은 시민들이 분노한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 여성단체들은 유엔의 여성대상폭력 근절의 날을 기념하는 것 뿐 만 아니라 본 판결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자 대규모 시위를 기획한 것이다.
        • 더불어 올해 4월, 스페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팜플로나(Pamplona)법원에서 5명의 남성이 지난 2016년 한 페스티벌에서 18세 여성을 끌고 가 성폭행하고 영상을 촬영한 혐의에 대해 9년형을 선고한 것이다. 이는 스페인에서 법으로 명시한 집단 강간 처벌에 비해 가벼운 수준이었는데, 스페인 현재 형법(Penal Code)상에서는 가해자가 칼로 협박하거나 신체 부위를 때리는 폭행을 가했다는 증거가 있을 때만 강간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법원에서는 영상 속 피해여성이 수동적인 듯 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피의자들이 폭력 및 압력을 행사한 증거가 없다고 보았다.
        • 본 판결 이후 스페인 곳곳에서는 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6월에는 법원에서 보석을 허용하여 피의자들이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사실이 알려지자 시위가 몇 차례 더 일어났다. 이후 7월, 스페인 정부는 향후 형법을 일부 개정하여 강간 인정 및 처벌을 보다 포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12월 5일 열린 항소심에서도 피의자들은 원심과 동일한 9년형을 선고받았고, 오히려 한 피의자의 변호사는 합의된 성관계였음을 주장하며 대법원에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올해 스페인에서 여성대상폭력 근절을 촉구하는 수 많은 시위가 열리고 시민들이 여성대상 성폭행 사건과 판결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만큼, 앞으로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형법을 개정하고 폭력 예방 및 철폐를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칠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참고자료
        1. BBC(2018), "Spain rape law: Outcry as court rules attack not violent," 2018년 11월 23일자,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46315969(접속일자: 2018년 12월 7일)
        2. El Pais(2018), "Las 166.620 denuncias por violencia machista de 2017, la cifra más alta desde que hay registros," 2018년 3월 12일자, https://elpais.com/politica/2018/03/12/actualidad/1520845944_225662.html(접속일자: 2018년 12월 7일)
        3. The Guardian(2018), "Thousands march in Spain to oppose violence against women," 2018년 11월 25일자,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8/nov/25/spain-protest-march-oppose-violence-against-women(접속일자: 2018년 12월 7일)
        4. The Local(2018), "Spanish court sticks to nine-year sentence for 'Wolf Pack' sexual abusers," 2018년 12월 5일자,  https://www.thelocal.es/20181205/spanish-court-sticks-to-controversial-nine-year(접속일자: 2018년 12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