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앰네스티, 덴마크의 성폭행 법적 정의 및 인식 문제점 지적
        등록일 2019-03-29

        국제 앰네스티, 덴마크의 성폭행 법적 정의 및 인식 문제점 지

         

        곽서희 로테르담 에라스무스대학 사회학연구기관 국제개발학 박사과정

         

        • 덴마크는 양성평등 수준이 매우 높다고 인식되는 국가 중 하나로 2011년 채택된 여성폭력·가정폭력 예방 및 철폐를 위한 유럽평의회 협약(the Council of Europe Convention on Preventing and Combating Violence against Women and Domestic Violence, Istanbul Convention)을 처음으로 비준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달 초, 국제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덴마크 사회에 아직 성폭행 문제가 만연하고 특히 법적 정의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 보고서는 덴마크 형법 상 성폭행 정의가 피해자의 신체적 저항 및 폭력을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어, 당사자 간 동의 여부에 근간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덴마크 형법(Criminal Code)에서는 성폭행은 신체적 폭력이나 폭력 위협, 압력, 또는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행해지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피해자의 신체적 저항 및 폭력을 중점으로 성폭행을 바라보는 법적 관점은 성폭행 신고뿐만 아니라 제도적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으며, 실제 덴마크 국립 경찰 가이드라인(National Police Guideline)은 피해자 조사 시 가해자에게 충분히 신체적으로 저항했는지를 질문하도록 명시 되어있다.

         

        • 덴마크 여성인권단체인 Danish Women's Society 부대표 헬레나 글리스보르 한센(Helena Gleesborg Hansen)은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이러한 법적 정의와 시행체계는 가해자의 범법 행위 자체보다도 피해자가 성폭행을 막을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가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녀는 "성폭행을 마치 가해자가 갑자기 풀숲 같은데서 뛰쳐나와 피해자를 공격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대부분의 가해자가 피해자의 배우자, 연인, 친구, 지인 등인 경우들이 많다. 그리고 이런 관계 속에서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기도 하고, 성폭행을 입는 상황에 처하면 많은 피해자들이 저항하기는 커녕 얼어붙어버리거나 심지어 잠들어 있다가 당하는 경우들도 많다. 현재 법에서는 ‘싫다'라고 하며 저항하기 전에는 마치 몸에 손을 댈 수 있는 것처럼 프레임이 짜여있는데, 그게 아니다. ‘좋다'라고 승낙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몸에 손대서는 안 되는 것으로 법적 정의의 기반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본 보고서를 위해 진행된 연구의 일환으로 실시한 인터뷰에서 성폭행 피해자들은 현 관점이 동의 유무를 기반으로 하는 관점으로 바뀌는 것이 피해자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은 신고 및 수사 절차에서 ‘충분히 저항했는가’와 같이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부적절한 질문들을 들어야 했고, 이런 경우 또 다른 정신적 트라우마를 추가적으로 겪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보고서에서는 현재 덴마크 경찰에서 활용하는 성폭력 관련 가이드라인이 일관되지 않게 적용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난민이나 이민자 여성, 비(非)백인 여성, 성전환 여성, 가정폭력 피해 여성 등은 피해자들은 신고부터 사법적 절차와 보호를 받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 덴마크 사법부(Ministry of Justice)는 1년에 약 5,100명의 여성이 성폭행 또는 성폭행 시도(attempted rape) 피해를 입는다고 추정하고 있다. 반면 덴마크 내 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 연구팀이 실시한 2018년 연구에 따르면 2017년 한 해에만 성폭행 또는 성폭행 시도 피해를 입은 여성이 약 24,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017년 실제 경찰에 접수된 성폭행 건수는 890여건뿐이었고, 이 중 535건만 기소되었고 94건이 유죄로 판결되었다. 성폭행 피해에 대해 정의하는 기준 및 관점에 따라 사법부와 학계 연구진의 수치에 격차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실제 공식 접수된 피해 건수가 890여건에 그친다는 점은 피해를 입은 후 용기를 내어 신고하고 제도적 절차를 밟고자 하는 경우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신고 및 수사 절차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 한 법적 정의가 적용되고 있다면, 과연 이것이 성폭행 피해자를 고려하고 보호하는 방향인지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참고자료>

        Amnesty International (2019.3.5.), "Give us respect and justice!: Overcoming barriers to justice for women rape survivors in Denmark”, https://www.amnesty.org/en/documents/eur18/9784/2019/en/ (검색일 : 2019.3.22.)
        BBC (2019.3.11.), "Does Denmark have a ‘pervasive' rape problem?,"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47470353 (검색일 : 2019.3.22.)
        France 24 (2019.3.6.), "Denmark has ‘pervasive rape culture’ despite reputation for gender equality, says Amnesty”, https://www.france24.com/en/20190306-denmark-rape-culture-women-violence-amnesty-international (검색일 : 2019.3.22.)